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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보릿대 공예가 공정식 시인

“50년 동안 이 금빛 보릿대가 좋아가꼬 여까지 왔다 아이가”

  • 기사입력 : 2013-11-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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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식 선생이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보릿대 공예가이자 시인인 공정식 선생이 보릿대로 직접 만든 병풍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11월 11일, 막대과자와 가래떡 대신 기다란 보릿대를 만났다. 여문 이삭을 뗀 흙빛 보릿대가 택배상자 안에 담겨 있다.

    손끝이 단단하고 검은 이가 대 하나를 쥔다. 칼로 보릿대를 가르고 앞뒤를 칼등으로 펴주니 납작한 황금빛 자 하나가 생긴다.

    요란스럽지 않은 부드러운 금빛이 감도는 대가 탐스럽다. 50여 년 보릿대와 함께 살아 온 이가 국산 보릿대만을 고집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사람, 고집이 이것만 아니다.

    “좋게, 제대로 할라믄 뭣이든 죽도록 해야 되지 않겠나.”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잠마을 ‘아리랑 움막’에 사는 낙월 공정식(73) 선생의 말이다.


    ◆50년째 보릿대로 만드는 글과 그림

    “이기 하나하나 붙이고 오리고 쉬운 기 아니거든, 내 봐라 머리가 허옇게 다 새뿌따 아이가. 근데 이 금빛이 그리 좋은기라, 세상에서 제일 좋다. 이뿌제?”

    칼로 편 보릿대가 더 납작해지도록 책 속에 끼워놓고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글과 그림을 화선지에 쓴다. 그 다음 화선지 앞쪽에 아교로 보릿대를 이어 붙인다. 두 보릿대의 이가 맞도록 마름질을 꼼꼼히 해야 하기에 칼질하는 품이 많이 든다. 이어 붙인 면을 뒤집어 날카로운 칼로 글자를 조심스레 오려내고 배경이 될 종이를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1m30㎝ 높이의 8폭 반야심경 병풍은 6개월, 2m의 높이의 10폭 병풍인 굴원의 어부사는 2년 1개월이 걸렸다.

    고된 과정과 묵은 시간을 거친 작품은 그만큼의 보상을 준다. 보릿대의 색이 일정치 않은 데다, 글씨마다 보릿대 결이 다르니 빛을 받으면 글자마다 내는 빛깔이 다르다. 글자 위로 부드러운 억새가 물결치는 모양이 장관이다.

    60년대 보리 농사를 짓던 선생은 보릿대가 늘 아까웠다. 이 고운 빛깔을 어찌 활용할 수 없을까 연구하고 고민하다 이것저것 만들어 본 게 여기까지 오게 됐다. 시인이었던 선생이 공예가로 들어선 것이다.


    ◆아리랑 움막은 고집의 결정체

    시를 쓰고, 보릿대로 시화를 만드는 작업을 마음껏 하고 싶어 가족들은 아랫마을에 둔 채 1972년 산으로 들어왔다.

    “바깥동네는 시끄럽고 잡념이 많이 생기서 안 된다.”

    공기 좋은 산기슭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방을 구분하고, 문을 달고, 내부에 발을 달았다. 움막 옆 오두막이 있고 그 아래는 작은 둠벙이 있다. 모두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필요해서 만든 것들의 집합, 이곳은 그의 삶에 특화된 공간이다.

    거실에도 작업하는 책상이, 잠을 청하는 가장 안쪽 방에도 작업 책상이 놓여 있고 방을 두른 벽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다.

    인터뷰를 하려고 앉은 작은 책상 위에 자리한 컵에는 안경과 펜, 숟가락이 한데 꽂혀 있다. 꽃 몇 송이도 멋스럽게 놓여 있다. 움막 내부를 둘러싼 발에는 다양한 작품과 액자들이 빼곡하다. 이곳에서 그는 붓을 들고, 칼을 든다. 물 소리를 밤새 들으며 세상의 이치를 깨닫으려 노력한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움막에 온 그에게 기상 시간을 물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원할 때만 작업할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벽 6시에 일어난다. 밥 해무야 할 거 아이가. 밥이 있으면 좀 더 자고, 허허~. 요 왔다고 퍼질러 자면 잡념이 더 생긴다. 내가 얼매나 바쁜데. 시 쓰다가 안 되면 칼 쥐고 파다가 안 되면 보릿대 펴고. 계속 한다 계속.”


    ◆끊임없는 자기반성에서 나온 결과물

    문을 열자마자 나오는 거실 오른쪽편 문을 열고 작품창고에 들어가면 꽉 들어찬 작품에 압도된다.

    대리석에 새긴 공자도와 나무와 유리, 돌과 도자기에 새긴 글과 그림들이 한가득이다. 그가 쉼없이 작품을 해 왔다는 증거물 사이에 특이한 작품도 보인다.

    시(詩) 글자를 3000번 이상 새긴 나무, 인을 1000번 새긴 도자기들이 보인다. 공자의 78대손이라는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공자 말씀에 ‘시 삼백 일언이폐지 사무사(詩 三百 一言以蔽之 思無邪)’라는 말이 있거든, 시경에 있는 300편의 시에는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말이야. 좋은 글들은 순수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저래 시 자를 좀 쓰면 마음이 정화돼서 시가 잘 써질랑가 싶어서 써 본기다.”

    선생의 마음다짐은 쉼이 없었다. ‘인생은 왔다갔다 하는 왕복 차표가 없다. 열심히 하는 일에 치중하라’ ‘머리는 깎아도 마음은 깎기가 어렵다’ 등 눈길이 닿는 곳곳에 써 붙여 둔 글귀는 모두 하는 일에 매진해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기 만족하는 사람이 있겠나. 100점짜리는 아무도 없제. 근데 조디(입)만 갖고 작품한다꼬 하믄 안 되는기라. 뭐든 계속 목표에 부딪히야 이루는 거거든.”

    노력의 산물로 선생은 지난 1월에는 일붕문학상을, 4월에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주는 한국문인상을 수상했다.


    ◆작품 계속 내놓고 비판받아야 예술가

    지난 1972년 마산(오늘 창원시) 고려다방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보릿대 공예전을 연 뒤 지금껏 13번의 서·화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움막 내부나 주변에서 한 서예나 시화 전시회를 빼놓고는 이렇다 할 개인전을 열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다.

    작품을 팔 목적으로 만들지 않는 공 선생에게 비싼 대관료는 전시회를 번번히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병풍 적어달라 카면 적어주고, 돈 주면 받고 안 주면 그 뿐이제. 작품 만들면서 ‘아 요기 얼마쯤 나가겠다’ 생각 해뿌리면 돈이 눈에 아른거리서 작업이 되긋나? 또 예술허는 사람들이 배때기가 부르면 작품이 안 나온다.”

    그래도 전시회만은 제대로 열어 사람들로부터 자신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다.

    시인인 그는 글을 엮어낼 때도 문집 등에 올라 인정을 받은 것들만 내려고 한다.

    공 선생은 지금까지 ‘흙 속에 시 속에’, ‘나는 멍텅구리올시다’, ‘어려운 세상 살더라도’ 등 3편의 시집을 펴냈다.

    펴 내지 않은 시만 해도 시집 6~7권 분량. 2011년부터 그리운 사람 100명을 선정해 쓴 시를 모은 ‘그리운 사람들’은 100편 모두 발표해 원고들을 차곡차곡 모아 뒀다. 조만간 시집을 펴낼 예정이다.

    올해 목표는 뭐였는지, 내년 목표는 무엇인지 물었다. “뭐 있나, 올해도 전시회 열라 했는데 못해뿟네, 내년에는 시집도 내고 전시회도 하믄 좋것다.”


    글=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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