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아동학대 신고의무 처벌 가능할까…울산시 딜레마

신고의무자 8명 조사했으나 가능성·정황뿐 결론 못내

  • 기사입력 : 2013-12-28 11:38:34
  •   
  •  8살 딸이 계모의 학대로 숨진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신고의무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 울산시가 딜레마에 빠졌다.

    '아동학대를 알았을 수 있다'는 정황만으로 처분을 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런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여론의 적잖은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말 울산에서 이모(8)양이 계모에게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11월 초 보건복지부는 울산시에 '아동학대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신고의무자를 파악해 과태료 처분을 하라'고 요청했고, 울산시는 다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경찰은 이양의 아동학대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큰 신고의무자 8명을 파악, 이달 12일 울산시에 통보했다.

    8명은 이양의 초등학교 교사 2명, 이양을 치료한 병원 의사 2명과 간호사 1명, 학원장 2명, 학원교사 1명 등이다.

    그러면서 경찰은 '이들이 신고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즉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8명으로 추렸으니, 울산시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28일 현재까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동학대를 알았을 수도 있다'는 애매한 정황과 의심만으로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에 부담이 큰 것이다.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양이 다녔던 학교 측은 "이양의 엄마는 학부모 대표를 할 정도로 학교생활에 열성적이어서 계모라는 사실도 몰랐다"며 "이양 역시 밝게 생활해 학대를 의심할 수조차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이양을 가르친 교사가 정신적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하는 등 피해를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양을 치료한 의료진도 "엄마가 병원에 있는 내내 극진히 간호하는 등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었다"면서 "학대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을 인정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시도 이런 상황에서 과태료 처분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명확한 증거가 없어 당장 예상되는 행정소송 등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가 문제가 아니라, 처분을 받은 당사자들이 '낙인'으로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린 데다 정부도 직접 조사를 요청한 사안이어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않는 것도 부담이다.

    자칫 아동학대 근절에 의지가 없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논란은 신고의무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한 아동복지법이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울산지역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 찾아내라는 식의 이번 조사는 결론을 정해놓고 과정을 끼워맞추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안타까운 사건에 대한 공분을 잠재우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밝혔다.

    시의 한 관계자는 "법은 아동학대를 발견할 수 있는 22개 직군 종사자를 모두 신고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법 조항이 사회 불신이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는 울산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신고의무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다음 달께 과태료 부과를 포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