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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6) 서양화가 김인하와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 김성중

이 남자들의 예술코드는 '순수' 장르 달라도 마음 통했다

  • 기사입력 : 2013-12-30 14: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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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화가 김인하(오른쪽)와 김성중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가 도립미술관 앞뜰을 걷고 있다.



    예인(藝人)들의 껍질은 완강하다. 그 껍질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 간다.

     번데기를 지나 나방의 모양이 갖춰질 때면, 혹 누가 껍질을 찢고 해칠세라 더욱 단단해지고 질겨진다.

     껍질 속은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토양이기도, 완성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켜주는 단단한 성(城)이기도 하다.

     그러다 한순간, 젖은 날개를 털고 예쁜 나비가 되어 허공을 날아 오른다.

     나비는 미술일 수도, 음악일 수도, 또 시나 소설, 무용, 연극일 수도 있다.

     예인(藝人)들은 껍질 속에서 기나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낸 탓인지, 나비가 돼서도 쉬 섞이지를 못한다.

     오랜 탐색기(探索期)를 거쳐 같은 종(種)인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날갯짓을 같이한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또 예술 세계를 지켜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김인하(경남도립미술관장)와 지휘자 김성중(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같은 종(種)이다.

     미술과 음악. 전혀 다른 이들을 묶은 것은 순수(純粹)다.

     다른 세상에서 다른 길을 걷던 이들이 만난 것은 지난 2000년으로, 꽤나 기나긴 13년의 세월을 함께했다.

     김 관장은 지난 98년 성산아트홀 개관준비위원회 상임연구위원으로 창원에 내려왔다.

     당시 중앙무대에서 중견작가로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던 중이었다.

     김 관장은 "지루한 작업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또 늘 잠재돼 있던 고향에 대한 향수, 고향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의 기회를 찾고 있던 터였다.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하겠노라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2년 뒤. 성산아트홀이 문을 열고 초대 관장직을 맡았다.

     김성중 지휘자는 창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고, 성산아트홀이 개관하자 합창단을 이끌고 입주했다.

     둘은 이렇게 아트홀 운영자로, 또 입주단체 지휘자로 만나게 된 것이다.

     김 지휘자는 "그림은 전혀 몰라요. 하지만 같은 지붕 아래 있다 보니 한두 마디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말이 통하더군요. 뭐랄까, 자신의 예술에 대한 끊임 없는 탐닉. 좀 갑갑하다 싶을 정도의 집착, 시류에 이리저리 부유(浮遊)하지 않는 고집까지, 닮은 꼴이 꽤 많더라고요"라고 되돌아봤다.

     선수는 선수끼리 통한다. 둘은 오래지 않아 동종(同種)임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김 관장은 "알고보니 나이도 같더라고요. 관장 부임 초기에는 전시 분야는 그런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무대공연 분야는 젬병이었거던요. 극장 운영과 관련해 많이 물어도 보고 도움도 받았다"며 "지휘자 별명이 '보안관' 이에요. 틀리다 싶으면 꺼리낌 없이 지적하는. 오히려 그런 게 좋아 뭐라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됐다"고 했다.

     김 지휘자는 "서로가 '보안관'이었죠. 예술행정을 하면서도 순수함과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이 좋았죠. 행정이란 게 본래 어르고 달래고 하는 것인데, 자신이 옳다 싶으면 쭉 밀고 갔거던요. 철학이 뚜렷했다고나 할까요. 당장은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어 보이는 조치였지만 결과는 옳았던 적이 훨씬 많았어요"라고 했다.

     화가와 지휘자는 이렇게 서로의 순수에 이끌린 듯하다.

     화가는 "예술행정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장르가 다양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어떤 형태든 예술의 목적은 똑같다는 것이고 또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폭을 조금 넓히자면 장르는 표현의 도구일 뿐이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문화·예술인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순수한 목적성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고 했다.

     지휘자가 이를 받아 "같은 생각이다. 순수예술을 고집할수록 주머니는 빈약해진다. 이는 음악, 미술, 문학 등 모든 게 마찬가지다. 모든 예술은 감상자가 있어야 하고, 또 동조자가 있어야 한다. 최근 음악이 많이 변질되고 있는데 이를 탓할 바는 아니다. 감상자와 동조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선 불가피한 변화다. 하지만 변화의 목적은 음악 전달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사람을 현혹시키는 기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보이기만을 위한 음악의 변질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화가와 지휘자는 모든 장르에 침범하고 있는 최근의 상업성에 대해 걱정해 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서로가 확인했다.

     둘은 같은 고민에 같은 답을 내놓았다.

     누구랄 것 없이 자신부터 순수성을 지키고, 견지(堅持)해 나가야 된다고.

     화가는 "예술에 순수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예술이 '폭발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지휘자를 마음에 담은 것은, 음악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본질을 지켜내려는 순수에 대한 치열함이 몸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상 음악가다"고 했다.

     지휘자는 "아트홀 운영을 하면서도 바닥에는 항상 그림이 깔려 있음을 느꼈다. 자신의 토양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그러한 열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에서 예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술인이면서 예술행정을 해야 했던 화가로서는 균형잡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고 했다.

     화가가 좀 다른 얘기를 하자며 말머리를 돌렸다.

     둘만의 얘기를 하다 보니 지역 문화·예술계에 이런저런 하고 싶은 말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관조(觀照)할 만한 나이인 데다, 이력도 충분해 보인다.

     화가는 "연말이면 관장직을 떠난다. 부임하면서 "도민들은 도립미술관이 있어서 행복하도록 하고,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켜야겠다"는 각오를 했는데 잘됐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때 상황에 최적의 만족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라고 했다.

     아마 나름의 미술행정을 디자인했지만 현실이 그만큼 따라 주지 못했던 것 같지만, 떠나는 입장에서 속을 다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지휘자가 잠시 틈을 준다. "지역 음악계에도 답답한 점이 많다. 인프라가 좋아지고 단체도 많아졌다. 관중의 수준도 높아졌지만 음악인 스스로가 자기계발을 게을리하고 있다. 게다가 연주자가 연주 외적인 욕심을 부리는 경우도 있는데, 음악계 전체를 위해선 당장 고쳐야 한다. 합창이 자신의 목소리를 낮춰 다른 사람과 섞여야 되듯, 남의 입장과 얘기를 존중하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문화정책이나 지원도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제 식구 챙기기나 나눠먹기식 분배는 곤란하다. 가장 순수해야 할 예술계에 인맥이 작용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고 했다.
     지휘자의 센(?) 말에 화가도 용기를 내 잘렸던 말꼬리를 이었다.

     "지역 미술계도 메세나 등의 지원이 활발하고, 갤러리도 많아 조건은 양호하다. 양적 팽창을 질적 팽창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이는 순전히 작가들의 몫이다. 좀 더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권한다. 지자체에 앞서 국가 전체의 문화예술 지원이 열악하다. 문화·예술이 지닌 힘을 생각하면 정책적 배려가 턱없다"고 했다.

     다시 둘만의 얘기로 돌아왔다. 둘은 새해가 되면 환갑(還甲)이다.

     지휘자는 "화가가 서울서 내려와 성산아트홀, 거제문화예술회관, 마산 3·15아트센터 등을 운영하며 보람도 많았겠지만 갑갑함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그동안 잘해 왔고, 분명 성과도 있을 것이다. 이제 자신도 챙기며 작품활동도 왕성하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화가는 "예술가에 있어 몸은 도구다. 지휘자는 신명이 넘친다. 그 신명이 건강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았음 좋겠다. 건강하게 예술적 열정을 피울 수 있기를 당부한다"고 했다.

     둘은 자리를 털고 도립미술관 뜰을 같이 나섰다. 톡톡 쏘는 바람 속, 모든 빛깔과 시간이 한 해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예술이란 게 개개인의 인생을 완성시키는 통로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제대로만 기능한다면 자신의 이웃과 사회도 완성시키지 않을까."

     두 사람의 얘기는 길을 따라 끊이지 않는다.?

    ??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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