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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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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경남! 더 큰 미래로] 해외봉사활동에 나선다

유치원도 도서관도 없는 곳에 희망을 그리다
이슬기 기자의 대한적십자사 라오스 봉사 동행 취재기
라오스에서 희망풍차를 돌리다

  • 기사입력 : 2014-01-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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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RCY 안옥주,임유란(17·창원중앙여고2), 서예린(19·한국국제대1) 단원이 라오스 탕콕- 돈하이 유치원에서 외벽 페인트작업을 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청소년 봉사단이 탕콕-돈하이 유치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탕콕 돈하이 마을에 사는 솜빠(10) 양이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라오스 국기에 색을 입히고 있다.
    3박 4일동안 머물렀던 탕콕-돈하이 마을의 아이들. 카메라를 들이대자 활짝 웃으며 제각기 포즈를 취했다.
    응급처치교육이 끝난 후, 김진경(16·하동여고1) 단원이 라오스 아이들에게 풍선으로 강아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옥수훈(23·경남대2) 단원을 비롯한 남자 단원들이 자갈과 모래를 섞은 시멘트를 유치원 교실 내부로 옮기고 있다.


    이슬기 기자


    느리고 평화로운 자연. ‘날이 더울 때는 음식을 먹고, 내키면 춤을 추어라’는 속담처럼 욕심 없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동시에 2012년 기준 1인당 GDP 1338달러로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라고 불리는 라오스.

    유치원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짓다 그만두고,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도서관 하나도 없는 학교가 많다.

    지난달 19일 경남, 울산, 전남·광주, 제주에서 모인 37명의 고등학생·대학생 RCY단원들,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임정한 RCY본부장 등

    4명의 관계자를 따라 라오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낯선 곳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 그들에게서 혹은 스스로 삶을 배우게 될 41명의 모습을 기록했다.

    6박 8일간의 여정이었다.


    ◆낯선 땅, 낯선 일들

    20일 라오스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단원들을 태운 버스는 건기에 흩날리는 흙먼지로 불그스레한 길을 따라 달렸다. 한국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라오스의 비엔티엔 시내를 지나 외곽 지역에 있는 야파초등학교에 갔다. 지난해 대한적십자 경남지사가 방문해 내·외부 페인트칠과 교구를 지원해주고 간 곳이다. 올해는 더러워진 외벽을 덧칠하고 빈 교실 한 곳에 예쁜 벽화를 그려 도서관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에서 페인트칠을 해보았을 리 만무한 단원들은 처음해 보는 페인트칠에 뺨과 팔다리에도 페인트를 묻히며 벽을 채워나갔다.21일 1시간을 버스로 달려 찾아간 곳은 홈스테이를 하면서 3일간 머무르게 될 탕콕-돈하이 마을의 유치원. 유치원에 가야 할 아이들이 많지만 마땅한 시설이 없어 올해 마을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초등학교 뒤편에 세운 건물이다. 교실 4칸을 만들려고 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33㎡(10평) 정도의 교실 두 칸만 얼기설기 완성한 뒤 138명의 아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있었다.단원들은 먼저 유치원 바깥에 바탕 페인트칠만 하고 이튿날 본격적인 교실 바닥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시멘트 작업이다. 단원들은 모래와 자갈을 날랐고, 물을 부어 삽으로 섞었다. 시멘트가루와 모래먼지가 심해 계속 가래침을 뱉었고, 신고 있던 운동화는 시멘트에 파묻혀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된 채로 바닥에 대(大)자로 뻗었다. 다른 단원들은 외벽을 하늘색으로 물들였다. 처음엔 질식할 것 같았던 페인트 냄새에도 익숙해져 갔다. 유성페인트가 뻑뻑하다 싶을 땐 능숙한 손길로 시너를 부어 농도를 조절할 줄 알게 됐다. 황애지(16·창원경일여고1) 단원은 “처음엔 페인트가 다 튀고 고르게 발리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붓놀림 요령이 생겼다”며 “한국에 돌아가서 페인트칠 아르바이트를 해도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나와 다른 세상에 적응하고 이해하는 일

    “토할 것 같아요. 도저히 못 먹겠어요.” 라오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단원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면에 라오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수’ 향이 강하게 배여 있었기 때문이다. 향도 물론이고 손으로 직접 찐밥을 꾹꾹 눌러 둥글려 먹는 문화도 낯설었다.음식도 힘들었지만 잠자리가 달라진 홈스테이는 더 큰 난관이었다. 김환웅(24) 단원은 “방에 벽이 뚫려 있어서 바람이 다 들어와서 정말 춥다”며 “화장실에 물을 틀러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서 수도를 열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라오스의 보통 가정 욕실에는 생활용수가 준비돼 있다. 용변을 본 후 변기에 그 물을 떠서 흘려보내야 했고, 같은 물로 머리를 감고 이를 닦았다. 차가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없어 땀범벅이 된 몸을 물티슈로 닦아내는 간이샤워를 하기도 했다. 홈스테이 가족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것도 답답한 것 중 하나였다. 안녕하세요(싸바이디), 감사합니다(컵 짜이) 정도만 아는 단원들은 전달하고 싶은 게 있어도, 홈스테이 가족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와도 알아듣지 못했다. 단원들은 라오스 국립대학 한국어학과를 다니는 라오스적십자사 스태프 수리냐, 싹, 퐁에게 찾아가 물었다. 그들이 없으면 온갖 보디랭귀지를 동원했고, 그것도 안되면 그림을 그렸다. 방법이 어찌됐건 따스한 마음은 전달됐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사원에 탁발하러 가는 단원들에 전통의상을 빌려주기 위해 다른 집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직접 입혀주기까지 했다. 거부감을 표시하던 몇몇 RCY단원들도 점차 의식주를 비롯한 라오스의 문화를 따랐다. 종교에 상관없이 사원에 갔으며 긴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아 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탁발할 때는 스님들의 바구니에 정성스레 음식을 나눠 담았다. 마지막 날 돈하이마을 주민들이 손님에게 축복을 빌어주며 실팔찌를 묶어주는 바시 의식에도 참여해 정을 나눴다.


    ◆‘모두 같이’ 하다

    라오스에서의 일정은 6박 8일이었지만 단원들에게는 8박 10일의 일정이었다. 봉사활동을 떠나기 직전 창원 늘푸른 전당에서 2박 3일 동안 사전교육을 받고, 조별활동을 연습했다. 벽화, 놀이, K-POP, 태권도, 홍보로 나뉜 다섯 팀은 준비로 밤을 새다시피 했다.힘들었던 밤은 라오스 주민들의 열렬한 환호로 돌아왔다. 돈하이 마을의 홈스테이 기간 동안 매일 저녁 펼쳐진 문화교류마당에서 태권도팀은 재미와 실력을 겸비한 공연을 펼쳐 사진 공세에 시달렸다. 학교 운동장에서 펼쳐진 놀이마당은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들어 단원들이 파묻힐 지경이었다. 단원들은 풍선으로 하트와 강아지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했고 함께 고무동력기를 만들어 날렸다. 페이스페인팅 물감으로 아이들 얼굴에 한국어 이름과 귀여운 캐릭터도 그려줬다. 김진경(15) 단원은 “내가 해주는 작은 일이 이곳 친구들에 기쁨이 되고,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에 설●다”면서도 “시간이 없어 줄 선 친구들에게 풍선을 다 못만들어줘서 미안하다”고 말했다.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는 단원들 사이에서도 싹텄다. 시멘트를 나르다 손에 물집이 잡혀도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일할 때 쉬는 게 싫다며 참고 일했다. 잠깐 쉴 때면 손이 덜 더러운 사람이 달려가 간식과 물을 갖고 와 다른 친구들 입에 넣어줬다. 서로 아픈 허리와 어깨를 주물러줬다. 고등학생 대학생 할 것 없이 서로가 서로의 멘토이자 멘티가 됐다.



    ◆라오스에 희망을 전하다

    탕콕-돈하이 유치원에 칠한 하늘색 벽 위에는 적십자 희망풍차를 그렸다. 빨간 풍차의 네 날개 중 하나는 태극으로 나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라오스적십자 스태프의 제안으로 즉석에서 태극문양 끝에 라오스 국기를 이어 그렸다. 실완(10)을 비롯한 라오스 아이들과 단원들은 함께 손도장을 찍어 색을 입혔다. 벽에 작은 손바닥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재밌어 했다. 교실 내부에는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큰 기린과 동산을 그렸고 다른 한 교실에는 아이들을 천사로 만들어 줄 날개를 그렸다. 벽화팀 손광호(23) 팀장은 여러 색의 아크릴 물감과 페인트가 뒤범벅된 손을 한 채 “처음 해보는 거라 고민했는데 모두 좋아해줘서 뿌듯하다”며 “아이들이 앞으로 이걸 보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봉사단은 페인트·시멘트 작업 이외에도 야파초등학교와 탕콕-돈하이 유치원·초등학교에 도서관 설비와 유치원 용품, 유치원 공사자재 등 모두 1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했다. 바안파우 중학교에서는 경남안전강사봉사회 이정은 부회장이 응급처치 강의를 했고, 응급처치교육 인형 ‘애니’를 선물했다. 봉사단이 도착하기 전날 고등학교 선생님 두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예정됐던 장소를 바꿔야 했을 만큼 사고 위험이 크지만 아직 라오스에는 응급처치교육이 미미한 수준이다.탕콕-돈하이 마을을 떠나는 날, 단원들은 크레파스와 노트 등 학용품이 든 ‘우정의 선물상자’를 라오스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홈스테이 가족들에겐 한국과자, 갖고 온 모기퇴치제와 슬리퍼 등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고 왔다. 어느새 단원들과 정이 든 라오스 주민들은 단원들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단원들 또한 붉어진 눈으로 쉽게 뒤돌아서지 못했다. 낯선 곳, 낯선 이들이 베푼 끈끈한 정이 그들을 부쩍 성숙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들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때는 희망이 좀 더 번져 있길 바라며, 싸바이디(잘 있어요), 라오스, 커이 학(사랑해요) 라오스!.


    글·사진=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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