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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7) 희곡작가 강수성과 연출가 장창석

통영과 연극, 30년 우정의 끈

  • 기사입력 : 2014-01-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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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출가 장창석
    희곡작가 강수성
    강수성 희곡작가와 장창석 연출가가 통영 중앙시장 내 극단 벅수골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구안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통영의 예인 두 남자를 만났다. 만날 장소로 정한 벅수골 소극장은 두 사람의 판이한 분위기만큼 다소 생뚱맞은 모습이었다. 좌판을 깐 시장 상인들 틈에 산뜻한 노란색으로 칠해진 소극장의 입구가 이채로웠다. 가감 없이 맨살을 드러낸 현실과 상상이 만든 예술의 세계가 혼재해 있는 묘한 느낌이랄까.

    2013년 경남문학상을 수상한 강수성 희곡작가와 극단 벅수골의 장창석 연출가의 공통점은 연극이다. 둘 다 통영 출신으로 한 사람은 희곡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연출가이니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처럼 보인다. 30년이 넘는 인연이므로 공통분모가 넘치게 많을 듯하다.

    그러나 눈과 귀로 느껴지는 강 작가와 장 연출가의 첫인상은 다분히 대조적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에 큰 표정 변화가 없는 강 작가와 투박하고 솔직한 어투에 형형한 눈빛이 거침 없는 장 연출은 가히 옛 선비와 무장에 비유할 만하다.

    “고교시절 유진 오닐의 ‘지평선 저 너머’에 매료돼 지금껏 희곡을 써왔는데, 통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아요. 하지만 젊은 한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희곡 때문에 통영을 떠나고 싶었어요. 요즘 젊은이들처럼 서울로 가고 싶었지요. 희곡이란 장르의 특성상 더 좋은 공연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대도시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단 생각에서 그랬어요. 나이 들어 뒤돌아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이유로 통영을 못 떠나본 게 후회가 됩니다. 통영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구요. 학창시절 말고는 평생을 통영 안에서 살다 보니 객관화된 통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 아닌가 하는 자책이 생겨요. 한마디로 ‘타자(他者)의 눈’을 갖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요.”

    최근 펴낸 희곡집 ‘코발트 블루’(도서출판 연극과 인간)에 대해 소개를 부탁하자 돌아온 강수성 작가의 아쉬움 담긴 자평이다.

    서라벌예대 재학 중이던 197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리’로 등단한 강 작가는 고향 통영에서 교직에 몸담았다 퇴직했다.

    장 연출가 역시 1981년 창단한 극단 ‘벅수골’과 함께 청춘을 다 보낸 통영 사람이다. 통영이 뿌리인 희곡작가와 연출가는 좋건 싫건 얽힐 수밖에 없었다. 강 작가 희곡의 초연을 장 연출이 거의 도맡아 공연해왔다.

    “제 작품 공연에 심혈을 기울이는 장 연출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낍니다. 문학작품으로 읽히는 것과 무대에서 공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나거든요.”

    장 연출에게도 강 작가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문학적으로 다듬어진 희곡작가가 지역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연출가 입장에서 희곡은 미완성의 그릇 같습니다. 소설은 작가의 화법에 독자가 따라가야 이해되지만 희곡은 해석에 따라 한 작품도 여러 가지 모양새로 빚어져 나오거든요. 무대에 오르기까지 연출, 배우, 스태프들의 상상을 거쳐 새 작품으로 탄생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문이나 해설이 많은 희곡이 싫습니다. 작가가 상상력을 제약하는 듯해서. 희곡작가는 작품을 공연팀에 시집보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잘살든 못살든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맞아요.”

    30년 넘게 외길을 걸어온 연출가 장창석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도 희곡작가가 듣기에는 조금 거북하지 않을까 싶은데 강수성 작가의 응수는 편안하다.

    “글을 쓸 때 작가도 장면을 그리면서 씁니다. 안 그러고는 희곡이 안 되죠. 그러나 제가 쓴 희곡이 연극의 대본이 되고 나면 그 어떤 변신도 저는 관여치 않습니다. 믿고 맡기는 편입니다. ‘저렇게도 되는구나’, 나름 감흥에 젖어 공연을 지켜보게 됩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는 토론을 벌이지 않는다는 두 사람. 연극이란 장르로 함께 작업한다기보다 문학가와 현장예술가로 각자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는 셈이다.

    “자기 역할에 대한 강 선생님과 저의 이러한 구분이 어쩌면 30년이 넘는 인연을 이어오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와 연출가의 충돌이 심심찮게 있거든요. 활자로 찍혔던 작품이 무대 위에서 입체적인 형상을 갖추고 관객을 맞을 때, 무한한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강 선생님과 저는 닮은 데가 있어요. 자유롭게 여행도 많이 다니시면서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많이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작(秀作)을 위해 다작(多作)이 필요하다는 연이은 장 연출의 격려성 발언에, 이어지는 강 작가의 대답은 느긋한 천상 문인의 답이다.

    “제가 집필의 집념이 좀 부족한가 봐요. 요즘 더 많이 읽으려고 합니다. 70년대부터 써온 단막극들도 정리해 출간할 계획도 있고. 최근 월간 문학에 ‘공원가는 길’이란 단막극을 게재했어요. ‘인간의 진정성 추구’란 주제를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아주 작은 소재로도 담아낼 수 있더라구요.”

    장 연출은 성품처럼 강 작가의 작품이 너무 조용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극단 운영자로서, 연출가로서 어떤 희곡 작품을 선호하느냐는 질문을 장 연출에게 해봤다.

    “극단 운영은 현실입니다. 훌륭하고 마음에 드는 희곡이라고 다 무대화할 수는 없어요. 만드는 사람이 좋으면 뭐 합니까? 관객이 없으면 무의미하잖아요. 그래서 내용에서든 형식에서든 이슈화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배우 수급이나 제작비, 준비 기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운영자 입장에서 가장 좋은 희곡은 운용 가능한 배우 수와 등장인물 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웃음) 최근 ‘블루 도그스’로 서울 대학로 공연을 다녀왔는데, 도내에는 부족한 젊은 배우들이 그곳에는 넘쳐나더라구요. 다들 바빠 보여서 뭐 하냐고 물어보니 작품이 없어 놀고 있다나…. 1년에 한두 작품 출연하기도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바쁜 척 서울에만 몰려 있는지. 정말 연극이 좋으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가리지 않고 해야지. 하다 보면 뜨기도 하는 거고.”

    얘기 끝에 젊은 후배들에 대한 웃음 밴 쓴소리가 살짝 나온다.

    “지역 극단도 달라지긴 해야죠. 도제식으로 배우를 길러내고 소주 한잔에도 같이 작업하던 시절은 지났어요. 서울이나 지방이나 연극하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원체계가 많이 좋아져서 여건이 나아진 편이지요.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공연의 질은 물론 단원들 삶의 질도 향상시키는 게 앞으로 제 목표입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장 연출의 외모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소탈한 면모도 있단다. 예순이 넘은 지금도 단원들과 함께 거리 포스팅 작업을 하고 극장 청소를 한다.

    “옆에서 지켜본 장 연출가는 갈지자 걸음 한 번 없이 자기 길을 가는 일관된 사람입니다. 강직하고 성실해요.” 강 작가의 장 연출에 대한 평도 망설임이 없다.

    “지역 작가의 희곡을 지역 극단에서 무대화해서 전국을 누비고 또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향토적인 작품을 고집한다는 건 아니고. 젊은이들이 서울로 서울로 하듯이, 연극제 수상을 고려한 연극제용 작품 선정 등 시류에 휩쓸려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자면 강 선생님이 많이 쓰셔야 됩니다.”

    “써야지요. 소설이라면 이렇게 오랫동안 쓰기를 계속 못했을 수 있단 생각을 요즘 합니다. 나를 통철하게 되돌아보고 채찍질하면서 맘에 드는 작품을 내놓고 싶어요. 물 흐르듯 잔잔한 작품이면 좋겠는데.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잖아요.”

    “아, 여지껏도 잔잔한데 더 잔잔하면 안 되는데….”

    “난 강렬하게 쓴다고 쓰는데 맨날 나보고 더 이슈 있는 작품을 쓰라네요. 하나라도 제대로 된 걸 써야 되는데.”

    “자꾸 쓰셔야지 선생님 맘에 드는 작품이 나오지, 허허.”

    십수 년의 연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의 작품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서로 존중하며 같이 만들 수 있는 접점을 찾는 작업이 삼십 년의 세월을 넘어 앞으로도 끝없이 이어질 듯하다.

    글=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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