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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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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친척정화(親戚情話)- 친척의 정다운 이야기

  • 기사입력 : 2014-02-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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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강점기 때 총독부에서는 조선 사람들에게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했다. 음력설 쇠는 것이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이라 말을 잘 듣지 않자, 면서기나 경찰을 풀어서 음력 설날 아침에 마을에 들이닥쳐 설이라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제사 지내고 세배하러 다니면 적발해 처벌했다.

    일본이 왜 이렇게 음력설 쇠는 것을 금지하려 했을까?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부터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했는데, 겉으로는 세계 조류에 따라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연말에 사신을 보내 중국에서 만든 달력을 받아와 다시 제작하여 반포해 썼다.

    동양의 관습에는 황제(皇帝)만 달력을 만들 수 있고, 제후(諸侯)급 나라는 자체적으로 달력을 만들어 쓸 권한이 없었다. 조선은 불행히도 달력을 만들어 쓸 권한이 없었다.

    일본은 조선을 먹기 위해서 첫째 중국과의 관계를 끊게 하기 위해 양력을 쓰도록 강요했다. 또 유구한 전통이 있는 음력설을 쇠면 자연히 조상을 숭상하게 되고, 조선의 뿌리를 생각하고 전통을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 국가를 광복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강력하게 음력설을 못 쇠게 했다.

    일본의 이런 속셈을 모르고 1948년 건국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 조류에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 양력으로 과세하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양력설을 쇠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음력설 쇠는 것은 미개적이고 미신적이라고 생각해, 음력 설날에는 관공서 학교 국영기업체 등에서 정상적으로 근무하도록 특명을 내렸다. 그리고 수시로 학교 등에서도 양력설 쇨 것을 권장하는 교육을 했다.

    그래도 한국 국민들 대다수는 음력설을 쇠었다. 음력 설날 정상적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려면 아주 불편했다. 음력설이 평일인 경우, 고향이 먼 공무원은 전날 늦게까지 근무하고 밤에 고향에 도착해서 설날 새벽에 세배 드리고 차례 일찍 지내고 다시 직장에 정상 출근해야 했다. 자기 차가 없는 시절에 정말 괴로웠다.

    이런 현실을 알고 1985년 전두환 대통령 때 비로소 음력설을 민속절이라 해서 하루 놀게 했다. 그러나 하루 가지고는 별로 나아질 게 없었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 때 드디어 지금처럼 음력설을 설로 공식 인정해 3일 동안 연휴를 즐기도록 했다.

    올해가 갑오년이니 갑오경장이 있었던 해로부터 120년 만이다. 100여 년 동안 음력설이 심한 수난을 당하다가, 이제 겨우 정상적인 음력설이 되었다.

    동족마을을 이루어 농사짓고 지내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부모형제도 1년에 몇 번 못 만나는 시대다. 설, 추석 등 명절 때문에 친척들의 얼굴도 보고 그동안 못 나눴던 정다운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생활 수준은 높아졌지만,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마음 터놓고 여유 있게 이야기 나눌 분위기가 못 되니, 알고 보면 사람마다 다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길이 막히는데도 몇 시간씩 차를 몰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 옛날처럼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가 그립기 때문이다.

    * 親 : 친할 친. * 戚 : 겨레 척.

    * 情 : 뜻 정. * 話 : 말씀 화.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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