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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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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촌수- 양영석(사회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4-03-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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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자녀 결혼식을 치른 지인이 한탄하는 얘기를 들었다.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난 친조카와 종조카(종질·5촌)가 생면부지의 사이처럼 인사를 나누며 명함을 주고 받더라는 것이다.

    조카와 종조카는 증조부가 같은 6촌 형제로 아주 가까운 친척인데, 그동안 누군지도 몰랐다고 하니 황당하더라는 것이다.

    촌(寸)이란 친족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척도이므로 친족 사이가 어느 정도 가까운지 먼지는 촌수에 의해 표시된다. 즉 촌수(寸數)가 적을수록 근친간임을 의미한다. 촌수는 ‘친등(親等)’이라고도 하며, 배우자 사이에는 촌수가 없다.

    촌수를 계산하는 방법에는 계급등친제(階級等親制)와 세수등친제(世數等親制)가 있다. 우리나라 민법은 세수등친제를 채택하고 있다. 방계친족 사이는 가장 가까운 공동 시조에서 각자에 이르는 세대수를 각각 계산해 그 합계를 촌수로 정한다. 예를 들면 형제 사이의 촌수를 정할 때에는 본인부터 부모까지의 1세수와 부모부터 형제까지의 1세수를 더해 2촌으로 한다. 이러한 방법은 자연혈족, 법정혈족 및 인척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촌수 자체가 친족의 호칭으로 대용되기도 하는데, 그 범위는 3~8촌이다. 숙부를 ‘삼촌’, 종형제를 ‘사촌’이라고 하는 것이 그 예다.

    복잡한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고 과학적이다. 부모와 아저씨뻘, 조카뻘 세대는 1촌·3촌·5촌·7촌·9촌 등 홀수이고 한 촌 건너갈 때마다 숙·질(질녀), 종숙·종질, 재종숙·재종질, 삼종숙·삼종질로 호칭한다. 가령 남편 친척들이라면 거기에 ‘시’자만 붙여 ‘시부모·시숙부·시종숙부라고 하면 된다. 아버지의 외가친척이면 촌수 앞에 ‘진외’(陳外), 어머니의 외가면 외외(外外) 자를 호칭 앞에 붙인다.

    그렇다면 친척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민법에서는 ‘친족이란 혈연관계에 있거나 혼인으로 맺어진 사람 중에서 일정한 범위 내의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1990년 이전에는 친족의 범위를 부계 8촌, 모계 4촌 이내의 혈족과 남편의 그러한 혈족, 아내의 부모로 규정해 남녀 간 차별이 극심했는데, 이는 소위 유복친(有服親)의 개념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부계와 모계, 남편과 아내를 구분하지 않고, 친족의 범위를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로 정하고 있다.

    친족 관계에 있는 자 사이에 인정되는 민법상의 중요한 효과로는 부양 의무, 상속, 혼인금지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형법상으로 형벌이 감면 또는 가중되는 특별한 효과를 갖는다. 형법 감면의 예로는 범인은닉죄, 증거인멸죄, 재산죄 등이 있고, 가중되는 예로는 존속살해죄 그리고 존속상해죄 등이 있다.

    소송법상으로도 어느 일방과 친족 관계에 있는 법관의 재판을 거부할 수 있으며, 친족이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친척들이 한동네에 모여 살거나 늘상 왕래하며 살던 옛날에는 어린이들조차 친척들의 호칭과 계보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호칭과 그에 해당하는 존재를 늘 보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일상 생활에서 친척들을 볼 기회가 많지 않은 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치열하게 무한경쟁적 삶을 살면서 자기 힘으로 성과를 내야 하므로 사람 간 유대감은 희박해지고 자연히 혈연 같은 원초적 유대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친척은 고사하고 이웃과도 유대관계를 맺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수시로 유사친척·유사이웃 관계를 맺고 산다. 또 친척이 누군지는 잘 몰라도,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근황과 생일까지 환히 꿰고 있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내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은 그래도 혈연관계에 있는 친척이다. 친척들의 촌수 정도는 상식 선에서라도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양영석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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