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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0) 김참 시인이 찾은 진해 바닷가

‘연분홍 봄’ 피기 전에 만난 ‘파란색 봄’

  • 기사입력 : 2014-03-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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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해 해변의 소나무들
    바닷가 옆을 지나가는 화물열차
    조선소 풍경

    진해의 바다와 산

    진해바다에 떠 있는 배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토요일 정오 무렵 진해를 향해 출발한다. 봄의 진해는 벚꽃축제로 유명하다. 하지만 군항제로 사람들이 붐빌 시기를 피해 조금 일찍 가본다. 벚꽃이 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번에는 벚꽃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진해의 봄 바다를 보러 간다. 바다 구경을 한 지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사는 곳과 가장 가까운 바다가 진해에 있다. 바다로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딱히 목적지를 정한 것이 아니라 바다가 처음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다. 해군교육사령부 앞 공원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름을 알 수 없는 해변공원. 진해루라는 큰 누각을 중심으로 바다와 마주한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 휴일 오후, 산책을 나온 가족들과 낚시를 하러 온 사람들로 공원은 제법 붐빈다. 나는 야트막하게 쌓인 방파제에 서서 바다를 본다. 파란 바다가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갑자기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의 낚싯대가 활처럼 휜다. 팔뚝보다 큰 물고기가 올라온다. 주황색 자전거 도로까지 낚여 올라온 물고기가 팔딱팔딱 뛴다.

    나는 해변공원 산책로를 거닐며 낚시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경한다. 큰 물고기가 제법 들어 있는 어망들이 보인다. 파도를 가르며 물고기가 또 올라온다. 산책하던 사람들의 눈길이 바다에서 금방 올라온 물고기에게 머문다. 오른편 해안선을 본다. 나지막한 산 앞에 아파트와 크고 작은 건물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저곳에 사는 사람들은 늘 바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나도 바다가 잘 보이는 집에서 한철 머물러 보고 싶다.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진해루 근처에서 가요제 예선 리허설을 하고 있다. 무대 앞에는 100여 명이 앉을 만한, 등받이 없는 낮은 의자가 있다. 구경하는 사람은 열 명 남짓, 나도 의자에 앉아 노래를 들어본다. 트로트 일색이다. 몇 사람이 차례로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는데, 가수는 구성지게 노래를 잘 부른다. 의자에 앉아 구경하는 중년 남자가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는 토요일 오후의 한가로운 기분,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하고 달콤한 순간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이 관중석에 앉는다. 아빠와 함께 걸어가던 아이 둘이 강아지를 보고 관중석 쪽으로 걸어온다. 네 살과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강아지 앞에 서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이들은 한참 동안 강아지와 논다. 강아지가 귀여웠는지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아이의 아빠도 웃는 아이들 옆에 앉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사람도 흐뭇한 표정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익숙한 장소에 와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풍경을 보던 내가 풍경과 동화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더 이상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응시하는 이방인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보는 바다는 어떨까? 나는 차를 몰고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간다. 소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는 곳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멀리 진해루가 보인다. 멀어진 거리 때문에 크게 울리던 음악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낮은 언덕에 일부러 심어 놓은 소나무 무리가 보인다. 사람이 만든 솔밭이다. 세월이 흐르고 소나무가 바람과 비를 맞으며 더 자라고, 둥지가 굵어진 소나무들로 솔숲이 더 무성해지면 솔숲과 바다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나무 우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소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있다. 언덕에 서서 바다와 해안선과 낮은 산들과 그 아래 모여 있는 집들을 바라보는 소나무, 소나무 가까이 다가가 나도 소나무와 함께 바다를,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소나무 옆에 동백나무 몇 그루가 붉은 꽃을 한껏 뽐내고 있다. 소나무와 동백을 품은 진해 바다는 고요하다.

    진해 부두를 지나 먼바다를 본다. 바다에 떠 있는 배들도 본다. 바다와 바다 배들은 모두 파란 색이다. 하늘도 파랗고 산도 파랗다. 장관이다. 햇살을 받은 바다 물결이 은빛으로 빛난다. 끝없이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다, 그 작은 파도에 와서 부딪히는 햇살, 눈이 부시고 황홀하다. 사진을 몇 장 찍어본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카메라가 모두 담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푸른 바다와 은색 물결을 내 눈에 담고 발길을 돌린다.

    진해에는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마을 앞을 따라 철길이 나 있는 곳이 있다. 설마 이곳으로 기차가 지나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로가 녹슬어 있지는 않았지만 폐선 같은 느낌이 든다. 철길 바로 옆에 어망이 쌓여 있고 그 앞에는 해안을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다. 집들 너머 있는 푸른 바다를 보고 있는데 종소리가 연거푸 울리더니 철길 옆 차단기가 내려가고 기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온다. 화물열차다. 화물열차는 마을 쪽을 향해 아주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나는 기찻길 바로 옆에 붙어서 레일 위를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본다. 화물칸들이 아주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역에 닿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것처럼 열차는 느릿느릿 지나간다.

    다시 바다로 이어진 길을 찾아 가는 길에서 산 옆에 핀 진달래를 본다. 진해 곳곳을 돌아다녀도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진달래가 먼저 봄 인사를 한다. 바다로 가는 길은 때때로 휘어져 있다.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눈에 들어오고 언덕을 휘돌아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바다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잠시 가파른 내리막길 옆에 서서 바다를 본다. 고향집 근처 언덕에서 멀리 내려다보던 바다처럼 잔물결로 반짝이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는 마을 쪽으로 내려가 본다. 횟집과 점포가 있고 주택도 있는 변두리의 작은 마을이다. 해변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내가 오래전에 썼던 시 한 편이 문득 생각난다.


    변두리 집들은 오래된 담과 대문을 가지고 있다. 불규칙적인 창문을 달고 있다. 집과 집 사이의 오르막길은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계단 옆 오리나무 위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 가파른 계단을 내려다본다. 계단을 따라 누군가 올라온다. 검은 가방을 들고 올라온다. 그러나 바다에서 올라온 짙은 안개는 불규칙적인 창문들을 지우고 가파른 계단을 지우고 계단을 올라오는 누군가를 지운다. 그의 검은 가방을 지운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화물차의 기적소리가 울리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는 마른 기침소리가 들린다. 짙은 꽃향기를 뚫고, 방송국에서 발사한 전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변두리 집 어느 방안에서 기지개를 켜며 한 남자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 졸시 ‘아침’


    바닷길을 따라 가는 산책에서 느닷없이 조선소를 만난다. 멀리서 보아도 규모가 상당히 크다. 진해에 이렇게 큰 조선소가 있는 줄은 몰랐다. 조선소 근처엔 선착장이 있고 작은 배들이 묶여 있다. 선착장 계단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바닷바람은 제법 차지만 그래도 날이 풀려서인지 오늘따라 낚시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날이 좀 더 풀리면 진해는 벚꽃으로 가득할 것이다. 작고 하얀 꽃들로 환할 진해의 아름다운 봄을 상상하며 나는 태어난 지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아기가 놀고 있을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글·사진= 김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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