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농도- 천융희
- 기사입력 : 2014-03-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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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긋고 가는 아침 여덟시
벤치에 걸쳐진 한 사내가
그늘 속 제 그림자 위로 긴 숨을 토해낸다
어깨에 매달려 떠도는 가방 속,
민망하게 구겨진 하루치 노동과
가파른 계단 끝에 걸린 퀭한 살림들
수면에 흩어져 가물거리고
돌에 눌러 절인
깻잎 몇 장 진설한 채
새까맣게 탄 목구멍을 흘러내리던 낮술이
일회용 컵에 거꾸로 돌아버린다
서서히
꺼 버리고 싶은 심장인 듯
반듯이 누워 두 손을 포개는 사내
늘어진 버들 한 자락
가끔 그의 심장에 귀를 갖다 댈 때
깔고 누운 희미한 그림자
취기로 흔들린다
접히는 하루가 검붉다
☞ 늘어져 있는 가방 그 속에 숨어 있는 구겨진 노동, 구차한 살림살이에 지친 한 사내가 들어왔어. 아름다운 호수풍경 안중에도 없이 긴 의자 점령한 채 누운 사내, 낯설지만 누군가의 이웃이기도 한 사내에게 드리워진 가난을 보았어. 순화시키고 싶은 슬픔의 농도 시인은 진실된 시의 몸짓으로 말하고 싶어 하지, 만약 밤 새워 떠돌던 이에게 한 번쯤 따뜻한 집 꿈꾸게 한다면 시인의 언어에 우리도 함께 취한들 어때, 다 같이 시의 기도문 외워 볼까 가만히 가슴에 두 손 얹어 봐. 당신의 심장은 피돌기를 끝내고 곧 뜨거워질 거야. 어둠 속에서는 그림자가 빛나지 않는 법 햇빛 앞으로 용기 있게 나서는 건 어때, 어느새 다가온 희망이 보인다면 가난이라는 먼지 낀 삶 깨끗하게 지우고 이제 길고 긴 방황 그만 행복 시작이야. 김혜연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