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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1) 박서영 시인이 찾은 밀양 위양지

왔구나, 깃털 같은 봄

  • 기사입력 : 2014-04-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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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양못에 드리워진 나무들
    위양못의 풍경
    위양못 안에 있는 완재정
    삼은정
    퇴로고가마을 한옥 탐방로
    퇴로고가마을 이병수 가옥



    봄이 오면 ‘프라하의 봄’이 떠오른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은 매우 짧고 강렬한 체코의 자유 민주화운동을 말한다. 영화는 80년대 후반 개봉되었고, 원작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나는 삶이 무거운데 당신은 너무 가볍군요’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20대 초반 마산의 극장에서 ‘프라하의 봄’을 보았다. ‘프라하의 봄’은 내가 최초로 본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였다. 밀양 위양못으로 가면서 간밤에 다운로드 받아 본 ‘프라하의 봄’을 다시 떠올렸다. 사랑이 진지한 여자와 사랑이 가벼운 남자의 연애. 성과 육체. 당시 체코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사랑이라는 가벼운 외피를 뚫고 드러나는 지식인의 고뇌와 존재에 대한 고통이 담겨 있다. 세상의 봄이 농담처럼 왔다가 가 버리는 길에서 가슴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봄. 그 봄이 오길 기다리면서…. 우리의 조국에도 그런 봄이 잠시 왔다가 갔었지. 민주화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 자욱한 이름으로 매캐한 봄을 보낸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많은 것들이 간절했다. 한 국가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는 교묘하게 닮았다. 사랑과 열망. 자유와 희망. 그리고 집착과 이별. 어김없이 깃털 같은 봄이 왔다. 당신은 또 잠시 머물다 가겠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름다움의 박해자가 간과한 곳이에요. 참을 수가 없어. -프라하의 봄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박해하며 살고 있는지. 훼손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강하지 못해, 약해, 그래서 약한 나의 나라로 돌아가겠다는 테레사의 절망적인 대사도 잊을 수 없다. 국민을 위하여 시작된 정치가 국민을 위협하고 존엄을 무너뜨리는 지경에까지 이른 경우는 많다. 서울의 봄도 그렇다. 마산, 광주의 봄도 그렇다. 위양지(位良池). ‘양민을 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성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묘한 뉘앙스가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위양못이 농사 짓는 백성을 위해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처음 만들어졌다는데, 우리에게 수많은 ‘첫 번째 봄’을 안겨줄 정치가가 나왔으면 좋겠지. 조그맣고 소박하고 겸손한 그 수많은 첫 번째 봄들이 모여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해 주었으면. 소문이 번져나가는 봄날이다. 꽃이 피는 속도만큼, 꽃이 지는 속도만큼, 세상의 소문들은 휘파람처럼 휘익-휘익 지나가버린다. 깊이 뿌리내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는다.



    위양못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기억을 일러주는 밀고자가 있는 것 같다. 이런 봄날에는 더욱 그렇다. 위양못에 가면 내가 찾는 그것이 있을 거라고. 이 두려움의 정체를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고. 밀고자는 끝없이 내 등을 민다. 나는 위양못에 뭔가를 두고 온 것일까. 지난 이십 년 동안. 십오 년 동안. 십 년 동안. 그러고 보니 뭔가를, 누군가를 그곳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하다. 연둣빛 잎들을 매단 수양버들 가지들이 물속까지 닿아 있다.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처럼 설레고 떨리는 마음 같다. 위양못은 신라 때부터 존재했다는 작은 저수지다. 저수지 안에는 완재정이라는 정자가 붉은 황토벽에 둘러싸여 있다. 완재정은 1900년에 안동 권씨 후손들이 새로 지었다. 완재정 입구까지 걸었으나 문이 잠겨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바로 앞에는 이팝나무들이 굵은 둥치를 드러내놓고 있다. 초여름 이팝나무에 하얗게 꽃이 피면 물빛까지 하얗게 변한다. 꽃샘바람이 차다.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비 오는 날, 물이 피워 올리던 안개. 비를 맞고 향기를 내뿜던 솔숲. 호젓한 오솔길. 고요함. 문득 봄의 향기가 거짓말처럼 생생해졌다. 비가 내려준다면 더 좋을까. 물웅덩이를 건널 때 누가 손을 잡아준다면 좋겠지. 호젓한 오솔길. 이 장면은 영화 ‘프라하의 봄’의 마지막 장면과도 겹쳐진다. 토마스와 테레사가 죽음의 오솔길을 달리는데 길의 소실점엔 안개가 자욱했다. 격정적이고 고통스러운 사랑의 끝에서 그들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으며 오솔길을 달려간다.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가듯이 솔숲을 걸어 퇴로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산수유와 박태기나무꽃, 매화가 흙돌담 안에 환하게 피어 있었다. 파랗게 보리가 자라는 밭을 지나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이씨 고가가 있다. 이 집은 여주 이씨 자유헌공파 종가집이다. 이만백 선생의 7세손인 항재 이익구 선생이 1890년 퇴로리에 입촌해 건립한 고택이다. 조선 말기 지방 선비 주택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 옆에 있는 ‘이병수 고가’ 앞에는 영화 ‘오구’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이 집 역시 문화재청에 의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조선 후기 양반집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한다. 마당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 한 분이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 이웃집 고양이인데 할아버지가 이 집에 거주할 땐 항상 곁에 머물러준다고 한다. 부산에서 다니러 오셨단다. 꽃이 피는 일주일 동안 이 집에 머물며 꽃구경을 하거나 씨를 뿌린다고 하신다. 평소엔 문을 잠가두신다니 내가 운이 좋다. 마을을 산책하다 보니 매화나무에 숙박하고 있는 새들도 부럽고, 사이 좋아 보이는 고양이 연인도 부럽다. 청춘, 혁명, 열정, 사랑, 그리움. 쏟아질 듯 꽃이 핀 걸 보니 곧 봄도 떠나버리겠지. 사월. 목련이 지고 있다.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있을 땐 좋다더니 저리 활짝 피워놓고 떠나겠다는 꽃나무가 야속하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도 농담이다. 꽃이 졌어요. 이런 말이 번져나갔다. 밀고자는 웃는다. 그 보라며 경고를 무시하더니 상처만 남았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감추고 있는 건 무거운 진실이다.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고, 책임져 주지 않는 봄날이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덮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했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또 생각한다. 아무리 인생이 힘들더라도 꽃 피는 것도 보고 노래도 들어야 하지요. 사랑도 해야 하지요. 그리고 꽃 앞에서 울기도 해야 하지요. 바빠요. 봄은 너무 짧으니까요.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아요. 이런 속삭임이 먼지처럼 떠다녔다. 다시 봄날이라니! 내 귀는 아름다움을 박해하는 자가 간과한 곳에서 피고 지는 꽃의 숨결을 듣는다. 퇴로고가마을 산책의 끝에서 만나는 삼은정(三隱亭). ‘삼은’은 나무와 물고기, 그리고 술을 뜻한다. 이것은 도연명이 꿈꾼 무릉도원의 세계와 닮았다. 용재 이명구가 갑신정변 이후 고향에 돌아와 살기 위해 지은 곳이라고 한다. 이명구는 뒤뜰에 회양목을 심고 마음속의 생각을 성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정치가들이 자신의 소임을 성실하게 실천한다면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길 텐데. 흰 동백과 목련. 복사꽃과 살구꽃. 삼은정의 연못은 잊힌 채 깊어져간다. 결별과 소멸의 애틋함이야 말해서 뭣하랴. 이 봄에 그리워서 갔는데 그리움마저 잠시 잊어버린 채, 나는 떠돌이 개와 길고양이와 함께 쭈그리고 앉아 놀았다. 셋이서 꽃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는 데도 하루가 짧았다. 그토록 짧았던 사랑. 다시 말해서 뭣하랴. 우리 곁에 떨어진 운석처럼 ‘봄’이 있다. 그것을 줍고 다시 파묻고, 슬픈 일은 혼자 앓아야지. 떠나는 봄을 붙잡지 말아야지. 행복하게 웃으며 당신을 만나러 가야지.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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