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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5) 김승강 시인이 찾은 성주사 가는 길

고통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곳, 절이었다

  • 기사입력 : 2014-04-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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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비는 현수막
    성주사 가는 길에 걸려 있는 연등
    사람들의 염원을 모은 돌탑
    성주사 대웅전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의 <산유화> 중에서

    ‘꽃사태’의 계절은 갔다.

    소설가 김훈이 어느 해 4월 전군가도(전주~군산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꽃잎 떨어지는 벚나무 둥치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자신의 몸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열리는 관능에 진저리 치며 쩔쩔맸던 그 봄날은 갔다. 그런데 어느 해 봄인들 다를까 했는데, 돌이켜 보면 올봄은 달랐다. 좀 이상했다. 자연이 정해 놓은 봄꽃의 개화시간표에 일대 혼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몇몇 꽃나무들은 자연이 준 시계가 아니라 저마다 각자의 시계를 갖고, 마치 다음날 중요한 약속이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사람처럼 시곗바늘을 10분, 20분 앞당겨 놓고 잠자리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결과, 산수유와 매화와 동백과 개나리와 목련과 벚꽃과, 봄을 알리는 거의 모든 봄꽃들이 간발의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피고 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여태 이런 일은 없었다. 수상한 봄이었다. 그들은 왜 서둘렀던 것일까. 왜 서둘러야만 했던 것일까.

    김훈은 “꽃잎은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고 했다. ‘속절없다’는 말, 지는 봄꽃에 만큼 딱 들어맞을까. 그랬다. 꽃잎은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김훈은 벚꽃이라 하지 않고 구태여 사꾸라라 했다. 사꾸라여야만 한다고 했다. 아마 그는 절정의 순간에 떨어져 내리는 꽃잎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자신의 몸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열리는 관능에 진저리치며 봄볕 아래서 혼절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올봄은 속절없다는 말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김훈의 관능 너머에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꽃들이 서둘렀던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이 짐작할 수 없는 자연재해의 기미를 짐승들이 먼저 알아채듯이 말이다. 물론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였지만.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는 술잔을 앞에 놓고 울고 있었다. 아니, 울었다고 했다. 울었다는데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속에도 눈물이 차올라 흘러넘치려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술잔을 들이켜 울음을 삼켰다. 그런데, 그의 울음은 내 울음과는 달랐다. 내 울음은 김훈의 관능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것은 봄날의 관능이 봄밤의 감상(感傷)으로 이어진 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울음은 더 깊고 더 처연했다. 그것은 내가 백번 혼절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그런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이 세상의 모든 어미와 아비들이 연대하는 울음이었다. 김훈의 표현을 빌리면, 그 울음은 ‘종과 속으로 구획되기 이전의 만유의 암컷과 수컷’이 사랑으로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이 돌연한 불운에 그 빛을 잃었을 때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그 울음은 울림이 컸다. 우리가 술잔을 기울였던 술집을 넘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공명했다. 그 울음 속에는 타자의 죽음을 속절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력감과, 그 죽음의 책임이 일말이라도 자신에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뒤늦은 회한을 담고 있었다. 한 차례의 울음이 지나가자 그는 어제 두 아이에게 전화를 해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이들도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의 품을 떠나 있는 두 아이에게 사랑고백을 끝내고 그는 안도하고 있는 듯했다.

    성주사 가는 길은 세계의 슬픔은 모른다는 듯 맑고 밝았다. 상수원 저수지 둑에서부터 시작해 길은 높이 차를 두고 차도와 인도로 구분되어 있었고, 인도는 다시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줄을 연결해 연등을 달아 두었다. 연등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훈처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내 마음은 맑은 날씨만큼이나 상쾌했다. 어젯밤 내 안에서 일어났던 바람은 조금 잦아들어 있었다. 바람은 일어나고, 일어났다 잦아들었다.

    어느 해 7월 나는 일을 마치고 매일 밤 절을 찾았다. 그 절은 내가 사는 동네 뒤 저수지 옆에 있었다. 절의 대웅전 앞에는 탑이 서 있었다. 탑 앞에서 나는 백팔배를 했다. 땀을 억수같이 쏟았다. 절에는 사자같이 생긴 누런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자전거를 타고 시커먼 사람이 나타났으니 개가 경계할 만도 했다. 짖거나 덤비지는 않았지만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개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는 절을 했다. 그때 내 염원은 간절했던가. 간절했다면 얼마나 간절했던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나는 절을 찾아 절을 했을까. 교회가 아니라 절을 찾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때 나는 절을 하고 있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절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게 해 달라고. 그러나 그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고, 그리고 울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고통을 타인이 대신할 수 없듯이 타인의 고통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절은 왜 필요했을까. 나의 경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타인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해주는 게 절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는 절망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해주는 게 울음이었다.

    성주사가 변한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 이미 마음 정리를 했으므로 성주사가 변했다 해서 새삼 섭섭하지는 않았다. 성주사보다, 부처님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아니다. 성주사도 부처님도 부처님 오신 날도 아니다. 성주사가 아니라 ‘슬픈 예배당’이라도, 부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도,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성탄절이라도 무방했다. 나는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속절없이 떨어져 내린 꽃들을 뒤로하고 성주사 너머, 성주사와 불모산 정상 사이 인적 없는 산길을 찾아 ‘갈 봄 여름 없이’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저만치 혼자서 하늘의 별처럼 피어 있는 꽃에 절정에 닿기도 전에 속절없이 떨어져 내린 어린 영혼들의 넋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 꽃에 절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낮추고 눈을 맞추고 싶었을 것이다.

    글·사진= 김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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