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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98) 김승강 시인이 찾은 밀양

밀양 없는 ‘밀양’이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 기사입력 : 2014-05-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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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남부교회
    밀양역
    영남루
    밀양철교


    ‘밀양’에는 밀양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밀양’에는 밀양이 없다.

    밀양에는 영남루가 있다. 영남루는 밀양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밀양시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맑은 밀양강에 비친 영남루의 야경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힌다. 밀양에는 표충사가 있다. 밀양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는 철따라 변하는 경관으로 연중 내내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표충사는 보물 제467호 표충사삼층석탑과 국보 제75호인 표충사청동은입사향완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밀양에는 얼음골이 있다. 재약산 북쪽 중턱 해발 600~750m의 노천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얼음골은 이른 봄부터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날 무렵 얼음이 녹는 현상으로 유명하다. 얼음골 주변으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장엄한 광경을 연출한다. 밀양에는 표충비가 있다. 표충비는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대사의 뜻을 새긴 비석으로 홍제사 경내에 있다. 밀양의 3대 신비 중의 하나로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면에 땀방울이 맺혀서 구슬처럼 흐르는데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염려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며 신성시하고 있다. 밀양에는 추원재가 있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숙자(김종직의 아버지)가 터를 잡고 김종직 선생도 만년에 제자들과 토론하고 강학하면서 평생을 보낸 집이다. 밀양에는 밀양관아지가 있다. 조선 초에 건립된 후 195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1612년 밀양부사 원유남이 중건했다. 밀양에는 월연정이 있다. 밀양 8경 중 하나로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이 세운 정사(亭舍)이다. 밀양에는 사자평이 있다. 밀양 8경 중 하나로 억새가 유명하며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고산습지 중에서 가장 넓은 억새군락지이다.

    그런데 ‘밀양’에는 위에 망라한 유적지 외에 김종직 선생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는 서원인 예림서원도 없고 임진왜란 때 의승장으로서 국난 극복에 많은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생가터인 사명대사 유적지도 없다. ‘밀양’에는 고려 숙종 5년(1100)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602년에 중건되어 경주향교, 진주향교와 함께 그 규모를 자랑하는 밀양향교가 없다. ‘밀양’에는 신라시대 때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된 저수지이면서 이팝나무가 유명한 위양못이 없다. ‘밀양’에는 <삼국유사>에 그 전설이 전해져 오는, 절 앞의 거대한 돌너덜 지대로 유명한 만어사가 없고, 조선조 명종 때 밀양부사 외동딸 동옥 아랑낭자의 정절을 기리는 아랑각도 없다. ‘밀양’에는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박물관(1973년 개관)이면서 특별히 일제강점기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자료를 수집·전시하고 있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밀양시립박물관이 없다. ‘밀양’에는 초등학교 폐교에서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난 밀양연극촌이 없고, 국내 최장거리의 왕복식 케이블카로 얼음골 일대와 사자평, 재약산, 가지산도립공원 일대를 감상할 수 있는 얼음골 케이블카가 없다. ‘밀양’에는 성종 10년(1479년)에 축조되어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밀양읍성과,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한림 옥당, 각조 낭관, 사간원 헌납 등을 거쳐 좌승지에 올랐던 금시당 이광진의 별장으로 1566년에 세워진 금시당이 없다.


    ‘밀양’에는 밀양역과 밀양남부교회가 있을 뿐이다. ‘밀양’에는 밀양역과 밀양시 가곡동 613-4번지 일대의 거리가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밀양에서 촬영된 영화 ‘밀양’은 밀양과는 무관한 것 같다. 그런데도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할까. 우리는 ‘밀양’을 밀양과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 ‘밀양’이 국내뿐만 아니라 제6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고, 이는 밀양 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기 때문이다. 밀양(密陽)과 ‘밀양(secret sunshine)’의 같은 점을 굳이 찾자면, ‘햇살(陽●sunshine)’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있다. 밀양의 밀(密)자를 들여다보면 비밀의 비(秘)자와 함께 밀(密)자에 똑같이 필(必)자가 들어간다. 이것도 착시현상에 일조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찾아가면 우리가 ‘밀양’과 밀양을 동일시하고 싶은 게 전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극중 신애 역의 전도연이 남편이 사고로 죽자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밀양이 죽은 남편의 고향이었다는 데서도 밀양을 ‘밀양’에 끼워 맞추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영화 ‘밀양’은 밀양(密陽)으로 시작해 ‘밀양(secret sunshine)’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고도로 계산된 감독의 연출 의도가 묻어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영화 ‘밀양’은 밀양을 통해 ‘밀양(secret sunshine)’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밀양’에는 밀양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영화는 신애(전도연)와 종찬(송광호)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신애는 남편이 죽자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가 살기로 하고 밀양으로 내려간다. 밀양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신애의 자동차는 고장을 일으키고, 작은 카센터를 운영하는 종찬은 레커차를 타고 신애의 자동차가 멈추어 선 현장으로 달려온다. 그 이후 종찬은 낯선 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는 신애 곁을 맴돌며 한발 떨어진 곳에서 신애를 도와준다. 신애에 대한 종찬의 그러한 태도에는 타고난 종찬의 성격도 있지만 신애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도 있다. 그러던 중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새 생활을 꾸려가던 신애에게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아들 준이가 웅변학원 원장 박도섭(조영진)에게 유괴되어 결국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의 연속에 신애는 절망한다. 신애는 고통 속에서 주위의 손길에 이끌려 신을 찾는다. 마음속에 신을 받아들이기로 한 신애는 잠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얼마간 마음의 평화를 얻은 신애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학원 원장을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학원 원장을 면회간다. 그러나 신애가 용서하기도 전에 학원 원장은 신에게서 이미 용서를 받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말한다. 신애는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용서받았음을 선언하는 학원 원장이 믿는 신이 자신이 어렵게 받아들인 신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며 신을 향해 절규한다.

    ‘세월호’ 소식으로 우울한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밀양’의 신애를 생각했다. 신애의 고통이 생각났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적 고통 속에서 신을 향해 절규하던 신애를 생각했다. 햇살이 ‘촘촘한(密)’ 봄날이었다. 나는 밀양을 찾았다.

    ‘밀양’에 나오는 밀양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익은 곳이다. 그런데 예전에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역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차양시설이 된 양쪽 옆으로만 이동했다. 텅 빈 밀양역 광장 한쪽에 붉은색의 광고판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광고판은 ‘밀양’에서 전도연과 송광호가 교인들과 밀양역 광장에서 전도하는 영화의 한 신(scene)을 보여주고 있었다. 좀 낯설고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밀양역 입구에 있는 밀양종합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전도연거리’를 물었다. ‘전도연거리’는 바로 옆에 있었다. 밀양의 유적지와 관광지를 안내하는 두 종류의 안내책자를 얻어 안내소를 나왔다. ‘전도연거리’를 지나 밀양남부교회를 둘러보았다. 교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교회 첨탑의 십자가까지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러야 했다.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절대적 고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가해한 가해자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를 통해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왜 인간을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빠뜨리는 것일까? 구원을 위해? 그 구원은 누구를 위한 구원일까?

    ‘밀양’은 용서와 구원에 대해 묻고 있다. 그러나 ‘밀양’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답하려고 덤비지 않는다. 묻고 있을 뿐이다.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밀양’은 신애의 주위를 해바라기처럼 맴도는 종찬을 통해 조심스럽게 구원(sunshine)을 내비치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힘을 내기로 마음먹은 신애는 낡은 의자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머리를 직접 깎는다. 거울은 빛이 없으면 그 기능을 잃는다. 종찬은 신애가 스스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도록 옆에서 거울을 말없이 들어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절망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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