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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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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불발지지(不拔之志)- 뽑히지 않는 뜻, 변하지 않는 의지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545)

  • 기사입력 : 2014-08-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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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출판계에 크게 화제가 되는 책이 있다.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가 편찬한 ‘대학연의(大學衍義)’라는 책이 완역되어 나온 것이다.

    왜 화제가 되는 것일까? 아무도 손댄 적이 없는 어려운 한문고전을 번역한 사람이, 유명한 한문학자나 고전학자가 아닌, 영문과를 졸업한 조선일보사의 문화부장 직함을 가진 이한우라는 사람이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는 2001년 독일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극한분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해보자는 다소 무모한 도전이었다. 물론 번역본이다. 7년이 걸렸다.

    그는 실록을 읽다가 진덕수의 ‘대학연의’라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연의’는 조선 전기에 왕실에서 아주 중요시해 늘 강독되던 책이었는데, 지금은 상당한 학자라도 이름도 생소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화제가 된 ‘정도전’이라는 드라마에서, ‘새 나라’를 꿈꾸던 정도전이 함께 혁명을 도모하는 이에게 건네줌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다.

    그가 번역본을 찾았지만 없었다.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의 골간을 이룬 책인 ‘대학연의’의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하는 조선 왕들에게는 필독서이자 ‘제왕학(帝王學)의 교과서’로 불린 이 책은, 통치철학과 실제 대응방법 950가지를 진덕수가 황제에게 간언하는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조선을 탄생시킨 태조와 그 아들 태종이 이 책을 탐독했고, 세종은 백 번 이상 완독하며 경연(經筵)에서 신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이 책은 통치의 의미와 제왕의 마음가짐, 인재를 발탁하고 간신을 구분해 백성들의 사정을 공정하게 살피는 법까지를 낱낱이 설명했다. 통치자라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자아를 성찰하며 술과 여색 등을 삼갈 것, 왕비와 후궁 및 그 친인척을 다스리고 경계할 것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어 ‘지도자의 필독서’로 평가할 만하다. 가정과 단체, 나아가 사회를 이끄는 리더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이 책을 익히고 실천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온고지신의 묘미를 직접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실록 작업을 마친 그는 2007년 한문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 목적은 ‘대학연의’를 읽기 위한 준비작업의 성격이 컸다.

    이미 영어나 독일어 철학책을 번역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번역 자체로 인한 문제는 쉽게 넘어설 수가 있었다. 문제는 한문 혹은 한자 자체였다. 원문으로 반복해 읽기를 4년쯤 하고 나니, 마침내 한자와 한문이 조금씩 그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대학연의’가 읽히기 시작해 원고지 7000장에 이르는 번역 작업을 끝내고서 얼마 전, 두 권으로 된 완역본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훌륭한 소질을 타고나거나 좋은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 학문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의지를 갖고 몰두하면, 조금 부족했던 사람도 얼마든지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不 : 아니 불. *拔 : 뽑힐 발.

    *之 : 갈 지. *志 : 뜻 지.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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