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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76) 창원 무학산 학봉에서 바라본 마산바다

마치 호수처럼, 한눈에 담기는 바다

  • 기사입력 : 2014-10-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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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무학산 학봉에 올라서면 마산시내와 마산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근심 가득한 마음으로 오늘 올라야 할 산을 바라봤습니다. 까마득히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이 마음을 더욱 갑갑하게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생각은 이내 사라지겠지요.

    복잡하다 못해 엉켜버린 머릿속 상념들을 정리해야 할 때면 나는 언제부터인가 산 앞에 서 있었습니다. 네, 오늘도 딱 그러한 날입니다.

    산 자체를 즐기며 오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저에게 산은 그런 의미입니다. 양 어깨 가득히 짊어진 짐을 내려놓는 장소,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서원곡을 거쳐 학봉에 오르는 코스를 선택한 터라, 서원곡 주차장에 차를 대고 시야를 가득 메운 숲길로 향했습니다. 두 다리를 괴롭히던 아스팔트와 달리 푹신하고 촉촉한 느낌이 발에 와닿습니다.

    5분여쯤 갈색 흙과 푸른색 나무로 가득 찬 오르막길을 걸었을까요. 운동과는 거리가 먼 몸이 벌써부터 투정을 부립니다. 짐이라곤 자그마한 물병 하나뿐임에도.

    10월 들어 한껏 서늘해진 날씨에 맞춰 옷을 너무 껴입었는지 벌써 목 뒤로는 땀이 흐릅니다. 때마침 오른쪽으로 돌 틈 사이를 세차게 흐르는 1m 정도 되는 꼬마폭포들이 눈길을 끕니다.

    잠깐 멈춰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려는 순간 불어온 가을바람은 산에 오른 목적을 알려주려는 양 매섭게 온몸을 휘감습니다.

    옷깃을 여민 채 다시 발길을 서두르다 또 발길을 멈췄습니다. 활짝 웃으며 등산로를 지키는 목장승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지요.

    그간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게 했던 잡생각들을 지우고 웃으라는 얘긴지, 한 나무 두 얼굴 장승의 미소는 자꾸만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며 지쳐갈 때쯤 평지에 가까운 길이 나왔습니다. 길 오른쪽에는 누군가의 염원을 담았을 돌탑들이 10여 개쯤 흔들림 없이 서 있습니다.

    이곳에 올라 걱정이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탑을 쌓았을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문득 온 마음을 가득 담아 쌓은 그들의 소망은 이뤄졌을지 궁금해집니다.

    함께 산을 오르던 선배가 “저기 다람쥐 아니냐”며 한 곳을 가리킵니다. 다람쥐인지 청설모인지 모를 녀석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빠르게 나무 뒤로 사라집니다.

    사라진 녀석을 바라보던 중 선배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기면 다시 찾을 확률이 25% 정도밖에 안 된다더라. 그렇게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들이 나무가 되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정말이요?”, “아, 그렇구나”라며 바보 도 트이는 소리를 하다 생각합니다. ‘매순간을 기억하며 스트레스만 쌓이는 나보다는 현재만 생각하는 다람쥐가 더 행복할 수 있겠다.’

    무언가 볼거리를 기대하고 산에 올랐던 것은 아닌데 쉴 새 없이 많은 것들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어느샌가 현실 속 고민은 멀어져 갑니다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 목적지는 보이질 않고, 다리와 어깨는 힘이 빠져 등산의 의욕을 상실해갈 때쯤 학봉으로 이르는 마지막 이정표를 발견했습니다.

    저 멀리 파란 나무로 가득 덮인 산 전체에서 유일하게 민둥한 암릉이 보입니다. 마음은 급하지만 발길은 서두를 수 없습니다. 학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 또한 대부분이 돌길인 탓에 두 손 두 발을 모두 사용해야 하니까요.

    동행한 선배는 문제 없이 힘차게 오르는 걸 보니 길이 험하다기보다는 등산화가 아닌 데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개인적인 문제인 듯합니다.

    돌 틈에 생수를 던져 놓고, 기듯이 힘겹게 오른 학봉은 생각보다 높았지만 아늑했습니다. 학머리를 연상시키는 학봉에 앉아 뾰족한 부리처럼 솟은 쪽을 바라보니 시야에 마산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뜩 담깁니다.

    지난 1년여간 나를 괴롭혔던 걱정, 근심들을 흐르는 땀과 함께 날려 보냅니다.

    해무가 잔뜩 끼어 푸른 바다는 보지 못했지만 뽀오얀 전경은 그 나름대로의 멋으로 사색에 잠기기에 충분합니다. 평일 오전이었던 탓에 주어진 고요함은 그저 멍하니 바다를 바다보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는 하려는지 시간이 멈춘 듯,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전경이지만 오늘날 높은 빌딩들이 마산을 가득 메웠듯 시간은 흐르겠지요.

    잔잔한 고향 바다를 떠올리며 어릴 적 함께 뛰놀던 동무들을 추억하던 이은상 시인의 ‘가고파’ 속 바다 모습이 지금 내 시야를 가득 메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다를 뒤로한 채 한없이 푸른 산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눈앞 가득 푸른 능선이 파도처럼 넘실거립니다. 그저 벅차다는 말밖에는 표현이 되질 않습니다.

    암릉에서 내려와 하산하려고 보니 올랐던 길 옆으로 보다 오르기 쉬워 보이는 길이 보여 허탈함에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내 힘들게 오른 탓에 이렇게 많은 걸 느끼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일들이 우리를 거쳐갔고, 슬그머니 찾아온 문제는 어느샌가 해결됐으며, 또 다른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네, 그렇게 벌써 1년이 지나가려 합니다.

    저 바다와 산도 그렇겠지요. 비와 바람이 찾아왔고, 때로는 그것들에 괴로워했지만 시간이 흘러 저들은 보다 푸릅니다.

    역경과 고난, 그리고 찾아오는 행복이 성장의 당연한 과정임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지나갈 텐데 뭘 그리 고민하시나.’

    글=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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