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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13) 김교한 시조시인

합포만의 잔잔한 울림, 그 속에 시조의 길이 있더라

  • 기사입력 : 2014-11-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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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교한 시조시인이 문학의 시야를 열어 주고, 합포만의 잔잔한 울림이 느껴지던 마산 어시장 부두에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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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문학관 뒤쪽에 있는 노산정에 올라 노비산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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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포만의 잔잔한 울림을 안고, 애틋함이 출렁이는 바다로 나갔던 마산 부두에서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다.




    풍성한 강호의 변화에 고개 숙이면서 뉘우칠 일만 수두룩한 가을을 맞아 지내온 시조의 길 50년을 대강이나마 돌아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초천리 산촌에서 출생해 자랐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재미있는 고전소설을 자주 낭독해 주신 기억이 생생하다. 울주 청량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1961년 11월부터 직장 이동으로 창원(마산) 사람이 된 지도 반세기를 넘고 있다. 시조의 길에 들어선 것은 이곳에 와서부터다.

    시조를 인생 여정의 동반자로 삼게 된 한 가지는 시조의 정형이 작은 것이 작지 않는 의문성이 매력이었고 가고파 그 시조의 고향 그리움이 한 가지였다. 나는 1962년 무렵부터 마산문협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의 길을 마음놓고 걷게 손잡아 준 것은 풍광이 수려한 가고파의 도시 합포만과 현대시조의 산맥이신 노산 선생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낸 첫 작품은 1962년 동아일보 독자 시조선에 응모 발표된 ‘차창’(3수)이었다.

    1964년엔 보건사회부 전국공모 기생충 예방의 노래 가사에 응모한 바 당선되어 장관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이어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에 단 한 번 응모한 ‘수양버들’(3수)이 최종심까지 올랐으나 빛을 보지 못하여 신춘문예는 끝내기로 했다.

    이 작품의 소재는 합포만 앞바다가 보이는 직장 건물의 뒤뜰에서 성장한 거목 중의 거목인 수양버들이었다. 매일 이 수양버들의 아름다운 장관(壯觀)을 우러러보며 종용히 나아갈 꿈을 다졌다. 이 수양버들로 1965년 시조문학 1회 추천을 받았다. 어떠한 흔들림에도 슬기롭게 다스리는 유연한 의지를 담았다. 수양버들을 싣는다.



    못 닿을 상거(相距)일까 연연(娟娟)히 피는 노을

    조각조각 맺힌 사연 수줍은 파문일레

    차라리 화석 못 되어 고스란히 타는 정.



    몇 고비 한숨으로 분화(分化)하여 오른 고개

    소망에 겨워 휘인 푸른 요람 흔들려라

    지심(地心)은 또 어디쯤서 가는 숨결 고르는가.



    긴 허리 시리도록 추원(追遠)하는 순간이여

    시름시름 바랜 사랑 어느 섶에 쏟았으리

    한 그루 수양으로 살아 고운 꿈만 길으려

    (김교한 작 ‘수양버들’ 전문)



    1965년에 마산 지역 중심으로 경남의 율(律)시조동인회가 탄생했다. 박재두, 서벌, 김교한, 김호길, 이금갑, 김춘랑 이상 뜻을 같이하는 6명으로 출발했다. 시조 중흥에 동참하는 선언을 문단에 고하고 율(律) 제1집을 내놓았다. 뒤이어 설악무산 스님이 동참하여 율(律)동인 활동의 전국화와 동인지 6권까지 간행하는 일에 정신적 큰 도움을 보탰다. 율 시조동인 활동은 한국시조문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인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조 그 절제와 은유의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1966년 4월에 시조문학 3회 천료를 거쳐 같은 해 9월에 한국문인협회 입회 인준서를 득했다.

    이 시기에 마산문협 발전의 중심을 잡아 주신 선배들을 잊을 수가 없다. 작고하신 분으로 김수돈 선생, 김춘수 선생, 정진업 선생, 그리고 가끔 만날 수 있었던 이석 선생, 이원수 선생, 김상옥 선생 외 몇 분이 더 생각난다. 이 분들은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다. 그 당시 마산문협에서는 주로 마산외교구락부에서 작품월평회를 제도화했는데 치열한 문학 정신을 실감했다.

    노비산공원은 지금은 마산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는 유서 깊은 동산이다. 산호공원, 추산공원, 가포해변과 함께 대표적 명승지였다. 노비산공원을 주된 소재로 지은 노산 선생의 명시조와 명시가 전한다. 단수로 된 시조로 ‘앉은뱅이’(1932년 작)와 2수로 된 시조 ‘옛동산에 올라’(1928년 작)가 있으며 4연으로 된 시(가사) ‘동무생각’(1922년 작) 등이 있다. 노비산공원은 예부터 문학의 동산이요 노래의 언덕이며 꿈의 망루였다. 바다를 향하고 있는 노비산공원은 언제부터인가 옛 모습을 적지 않게 잃고 있어 안타깝다. 그러나 ‘옛 동산에 올라’ ‘동무생각’은 국민애창곡으로 긴 세월 쉼 없이 성장해 왔다.

    문학관 뒤편에 노산정이 좌정하고 있다. 외로움도 그리움도 기다림조차도 명상으로 달래고 있다. 이곳에 자주 올라 잔잔한 바다 그 포용의 물빛을 바라보던 감흥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고층 건물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아 상상으로 끝내야 한다. 노비산을 배경으로 빛 찾는 문학의 소원을 노래한 단수 작품이다. 늘 마음 가는 석 줄이다.



    좀처럼 허물지 못할 외로움의 기둥이었다.

    아득히 잃어버린 그리움의 아픔이었다.

    집요한 꽃샘바람을 넘는 기다림이 있었다.

    (김교한 작 ‘노비산의 봄’ 전문)



    해산물의 박물관 같은 어시장 부두에 여객선 터미널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직장이 거제섬으로 옮겨짐에 따라 10년간의 근무지를 두고 천신호 여객선을 타고 합포만을 떠나게 되었다. 합포만 바다 위에 갈매기가 날아들어 의미 모를 노래를 떨구며 내 앞을 선회하던 그리운 빛살조차도 접어 두어야 했다. 날이 덜 샌 새벽인데도 뱃머리까지 전송 나온 이가 있어 그간의 친교의 정을 진하게 해 주었다. 문학의 시야를 열어 준 합포만의 잔잔한 울림을 고이 안고 임지를 떠나는 뱃길은 애틋함만 출렁이었다. 거제대교가 개통되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이때 남긴 졸작 한 편이다.



    기다림의 선창에 어둠 밟고 나선 사람

    천신호 뱃고동이 잠든 요람 깨우면서

    산산한 바다 이랑을 갈라 놓고 떠났다.



    새벽에 침묵 짙은 물빛처럼 서 있다가

    적요한 별리의 그림자만 남겨 두고

    돌아선 세월 속으로 진한 파문 안고 간다.

    (김교한 작 ‘새벽선창’ 전문)



    합포만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앞에 예시한 ‘수양버들’, ‘노비산의 봄’, ‘새벽선창’ 외에도 ‘아침산’, ‘봄 해변’, ‘탑’, ‘산에 오르니’ 등 다 들지 못한다. 무학산과 돝섬이 상견례하고 있는 합포만에서 문학 그 자존심의 길을 조명해 온 지 반세기를 넘고 있다.

    이제 건강을 돌보느라 손 떼고 싶어도 한사코 놓아 주지 않는다. 합포만 그 세월 속의 정경은 내 문학의 꿈밭이며 지평이었다.

    <김교한 약력>

    △1928년 울산시 울주군 출생 △1966년 시조문학 3회 천료 등단 △시조집 ‘대’ ‘미완성 설경 한폭’ ‘잠들지 않는 강’ 등 △한국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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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한국사진학회 이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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