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 천민으로 이 땅을 떠돌아도
너는 가을벌레처럼 흐느껴 울지 마라
풀밭에 온몸을 꿇린 소처럼도 울지 마라
세들 쪽방 하나 없어 어린 뱀밥 내어 주고
흙 한 뼘 햇살 한 뼘 지분으로 받아든 죄
무성한 바람 소리에 귀를 닫는 저물녘
뽑히면 일어서고 짓밟히면 기어가는
너는 끊긴 길 앞에서 아무 말 묻지 마라
허공에 흩뿌린 풀씨 그 길마저 묻지 마라.
☞쇠뜨기는 잡초다. 잡초 중에서도 농민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잡초다. 생명력과 번식력이 너무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천대받는 쇠뜨기의 상징은 시에서 ‘불가촉 천민’으로 명명된다. 굳이 이 땅에는 없는 인도의 카스트 계급을 들이댄 것은 유연함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고정된 계급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불가촉 천민’을 향한 이 시의 당부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직장에서의 관계 때문에, 가족 간의 불화로, 사랑 때문에, 질병으로……. 언제라도 우리는 끔찍한 소외를 경험할 수 있다. 돈에 지고, 세상에 지고, 사랑에 지고, 건강에 지고, 하찮은 뱀풀(뱀밥)에게도 지고 난 저녁 어스름, 그 저물 때의 자세를 이 시에서는 이야기한다. 더 정확히는 ‘절규’한다. 조예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