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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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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마산·진해·진주의 헌책방 나들이

시간 깨고 시간 꿰는 시간여행의 출발역
빽빽이 들어차다 못해 책장 앞에 쌓인 책들
그 위에 앉는 것만으로 타임머신 착석 완료

  • 기사입력 : 2015-04-2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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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서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어깨에 내려 닿는다. 빽빽이 들어차다 못해 책장 앞에 쌓인 책들, 그래서 저절로 의자가 된 책들. 그 위에 가만히 앉는 것으로 탐험의 시작을 알린다. 엉덩이를 붙이면 타임머신 착석 완료. 좁다란 책장 사이에 푹 파묻힌 느낌이 드는 순간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간다. 과거의 세계가 열린다.

    여러 과거가 공존하는 공간에 갇힌 기분, 방해받을 일이 없다는 생각에 이내 차분해지면서 눈에 글자들이 하나하나 들어온다. 너무 많아서 다가서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버릴 책등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선반을 채우고 있다. 책들은 낡았다는 것뿐, 꽂힌 채로는 새 책과 다를 바 없지만 꺼내보면 달라진다. 사람의 이야기가,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려고 큰맘 먹고 산 사전 책등에는 주인의 이름과 훔쳐가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커다랗게 자리하고, 시집에는 그 시집을 산 날의 느낌을 오롯이 썼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책에는 끼워 놓은 엽서가 툭 떨어진다. 책 주인의 사연과, 책 주인에 이 책을 준 사람의 사연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인다. 면지에는 책 살 때의 느낌을 간단히 쓴 일기가, 책을 선물로 주면서 남긴 글이, 그 책의 작가로부터 받은 사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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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내 헌책방인 영록서점에서 한 시민이 책을 읽고 있다.

    면지에 쓰인 몇 글자와 책에 그어진 밑줄이 그 사람의 일부를 읽게 만든다. 모르는 사람의 취향과 내 취향을 맞춰 보기도 한다. 지역 책방이다 보니 이 책 저 책 뒤지다 보면 주변 사람이 내놓은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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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지키고 서 있는 곳. 흐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곳. 쓸모없음이 있음으로 변하는 곳, 이곳이 헌책방이다. 이들은 고맙게도 책을 무더기로 쌓아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현대사회의 옷깃을 잡아끈다. 하지만 이들도 점차 사라져가는 중이다. 다행히 헌책방이 여럿 모여 있는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지역에는 헌책방이 남아 있다. 이번 주말, 헌책방에 꼼짝없이 들어앉아 여러 시간을 펼쳐드는 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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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영록서점에서 박희찬 대표가 헌책을 정리하고 있다.

    ◆찾았다! 보물

    헌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영록서점 박희찬(60) 대표는 ‘꽃은 떨어지고 사라지지만, 헌책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며 헌책을 예찬한다. “큰 서점에도 없는 책이 여기에는 있지요. 요즘은 사람들이 책을 별로 안 사니까 여러 권 찍어내지 않아서 절판도 빠르기 때문에 사라지는 책들이 많아요. 헌책방에 오면 필요한 책들을 찾을 수도 있고, 직접 책 상태를 알 수도 있지요.”

    근현대에 쓰인 교과서부터, 잡지, 사전, 소설, 문학전집, 백과사전은 물론이고 족보가 들어올 때도 있다.

    황정순(52·제주시 천수동)씨는 마산에 있는 조카집에 와서도 헌책방에 들렀다. “제주에서도 헌책방에 가는 편인데, 마산에 헌책방이 많아 사회운동 하신 분의 1980년대 당시 글을 찾으려고 와 봤어요. 여기 오기 전에 중앙동 헌책서점에서도 서너 권을 사서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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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집가들에게는 또 다른 보물창고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이나 시집의 초판, 혹은 잡지의 창간호를 모으는 이들의 성지와도 같다. 초판의 경우에는 가격이 높다. 3, 4일 후에 2쇄를 찍었다 하더라도 초판과 가격 차가 크다. 근현대 교과서, 향토 자료 등의 연구자료를 찾는 사람도 있다. 무심코 집은 손바닥만한 책은 1965년 출판된 박문출판사의 ‘제주도 사투리’. 대화 상황을 설정해 제주사투리를 알려주는 책이다. 검색해보니 원본을 구할 수 없는 귀한 자료로 나와 있었다. “딱 봐도 귀해 보여서 내가 인터넷에 올리려고 둔 건데 잘 찾았네요.”

    추억하고 싶은 때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이 헌책방을 찾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헌책방에는 오래된 책부터 최근 책들까지 있기 때문에 어느 누가 가도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 학창시절 엄마가 시험 잘 볼 때마다 한 권씩 사주시던 만화책, 책상 아래 숨겨서 보던 책들까지 모두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힌 가격과 서점 영수증은 향수를 증폭시킨다.

    “요즘 볼 수 없는 것들을 구경하니 올 때마다 재밌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 갈 때가 많아요. 요즘 가게에서 대화하는 게 드문데 책방에서는 아저씨께 이 책 있냐 없냐 여쭤보는 것도 좋고요. 아지트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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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자! 헌책 나라로

    영록서점= ‘영록서점’에 오면 ‘산더미처럼 쌓인 책’이라는 표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44년째 헌책방을 해오며 귀한 책이 꼭 필요한 사람을 찾았을 때 가장 보람되다는 서점 주인 박희찬(60)씨가 석전동 창고의 책을 포함해 120만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5만권이 온라인으로 등록돼 있으나, 서점 1층의 책들은 인터넷에 올리지 않은 책들이다.

    전국 최대 규모 헌책방인 이곳은 건물 1, 3, 4층을 모두 쓴다. 1층은 손님들에 개방한 곳이고, 3, 4층은 책 창고로 쓰고 있다. 내달 중순께는 3층 야외에 잠시 앉아 커피를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을 완성할 예정이다.

    “서점 이름인 ‘영록’이라는 뜻이 풀이 자라면 나무가 되고 나무가 크면 고목이 돼 그림자가 생긴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꼭 쉬어가는 곳이 됐으면 했는데, 쉬는 곳까지 만들고 나면 헌책방 해서 돈은 못 벌어도 꿈은 이룬 거지 뭐.”

    책은 물론이고 LP와 비디오까지 가득해 책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낭만적인 곳, 주말에는 입구의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 아날로그 음악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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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서점·중앙서점= 마산중부경찰서 근처에 있는 ‘헌책서점’에 들어서니 헌책방보다는 책대여점 같은 느낌이 먼저 든다. 15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헌책방 일에 뛰어든 한영일(46)씨가 직접 레일 책장까지 만들어가며 수많은 책을 깔끔하게 정리한 덕분이다.

    “처음에는 책을 재었는데 재어두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만들었죠. 길가에 가게가 있다 보니 먼지가 많아 계속 청소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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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분류까지 잘돼 있어 책을 찾기가 쉽고, 그 덕분에 책 대부분 상태가 좋다.

    그는 근처에 있던 중앙서점도 인수해 책 창고로 쓰고 있다. 건물 지하와 1층을 쓰는 이곳에는 태백산맥 등 잘 보존된 대하소설들 전권이 몇 질씩 꽂혀 있고 보기 힘든 만화책과 잡지들도 많다.

    “이렇게 대하소설들 전권을 많이 갖춰져 있는 곳이 힘들 겁니다. 예전부터 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정말 귀중한 건 집에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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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헌책서점’에서 한영일 대표가 책을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놀아보자

    헌책방은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각자 뿔뿔히 흩어져 따로 놀 수도, 모여 놀 수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가족끼리 모여서 이 책 저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미다.

    여럿이 모여서 좋아하는 작가의 초판을 찾아본다든가, 전작을 모아보는 ‘보물 찾기’를 시도할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난 해의 책을 찾아서 연도별로 지금 책과 가격 차를 비교해 본다든가 누가 가장 오래된 책을 찾아오는지 내기해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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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어릴 때 봤던 책들을 보여주면서 옛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교과서에는 없는 놀이이자 교육이다.

    이때 책을 조심히 다루고, 다 보고 나서는 제자리에 반드시 꽂아두는 것을 잊지 말자.

    글= 이슬기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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