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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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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찾아서… (5) 남해 삼동면 멸치랑 칼치

입안은 제철 멸치 '생생', 온몸은 봄 기운 '생생'

  • 기사입력 : 2015-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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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절 없이 입에 맞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만 한 걸까?

    때로 계절감을 잊어가는 식탁 때문에 ‘제철 음식’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곰곰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음식에 철이 없어지면서, 사람 입맛도 덩달아 철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과일 접시를 채우는 다양한 국적의 과일뿐 아니라 한 번 맛보면 중독성을 지니는 독특한 맛을 지닌 토속 음식들도 제철 없이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다. 사통팔달의 교통과 냉방기기의 힘을 빌려 몇 년 전부터 바다가 먼 휘황한 유흥거리 식당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멸치쌈밥도 ‘철 없는’ 음식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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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조림
    연한 생멸치 살의 특성상 오래 보관하지 못하므로 멸치잡이가 가능한 바닷가 음식점에서 5월부터 두어달 반짝 맛볼 수 있던 생멸치 요리. 맵싹하고 진하게 조려진 멸치조림을 쌈 채소에 얹어 입으로 불어 식히며 싸먹는 맛은,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잊기 어렵다. 멸치도 생선이라 비리지 않을까 싶지만 된장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멸치조림은 구수하고 부드럽게 잘 먹힌다.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이 환영받는 생선요리 중 하나가 멸치조림일 것이다.

    짧은 제철이 무색해질 정도로 사계절음식이 된 멸치쌈밥의 제맛을 찾아 얼마 전 멸치축제를 펼쳤던 남해를 찾았다. 냉동 멸치로 차려낸 멸치쌈밥과 맛 차이를 느낄 수 있을지, 사뭇 기대에 부풀어 남쪽 바다로 내달렸다. 사천을 거쳐 창선교를 지나며 만나는 지족해협의 죽방렴 덕분에 남해멸치의 싱싱함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고, 그만큼 현지에서 맛보게 될 멸치밥상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물건방조어부림으로 유명한 물건리 해안이 눈에 들어올 때쯤 남해 바다맛을 대표하는 식재료 이름으로 간판을 내건 식당을 만났다. ‘멸치랑 칼치’. 도로 맞은편으로 올려다보이는 ‘독일마을’의 이국적인 풍치와 주차장 아래 시원하게 펼쳐지는 물건리 앞바다가 지나는 관광객의 발길을 한번쯤 잡음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맛집이다. 멸치와 갈치를 주재료로 하는 맛집이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담백한 간판이 나름 인상적이다.

    “멸치는 성질이 급하거든예. 뜰채로 건져올리자마자 죽는다고 봐야 되는데,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급이 달라집니더. 먼바다에서 그물을 던져 잡는 것보다 죽방렴 같은 정치망으로 잡은 멸치가 살도 단단하고 형태도 온전하게 유지한다고 봐야지예. 남해멸치는 환한 은빛에 흠집도 적습니더.”

    상 위를 가득 채우는 밑반찬을 보며 ‘멸치,갈치가 남해산 맞냐’는 손님들의 우문에 주인장 문태숙(62)씨는 볶은 멸치 접시를 가리키며 남해멸치 자랑을 시작한다.

    “볶음용은 한 달쯤 됐을 끼고, 회로 무치거나 찌개를 끓이는 생멸치는 1년 정도 됐을 낍니더. 살이 도톰하고, 씹는 맛이 날 정도로 크다 아입니꺼.”

    차분하게 멸치 설명을 이어가는 문 대표는 식당 경력 20년차 베테랑 밥집 사장님. 통영 출신의 그는 머구리 배를 가지고 있었던 친정 살림 덕에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면 도통한 축에 든다고 자기소개를 한다.

    김치, 호박, 버섯, 미나리, 콩잎, 톳나물, 오징어젓갈 등 반찬들 사이에 모자반과 오가피잎으로 담근 장아찌가 눈길을 끈다. 모두 주인장이 직접 채취하거나 기른 채소들로 차려낸다고. 식당 이름이 말해주듯 멸치와 갈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1만5000원짜리 정식이 이 집의 대표 메뉴이다.

    “남해 오시는 분들은 멸치도, 갈치도 다 드시고 싶어실 것 같아서 둘을 다 상차림에 올렸어예. 종합선물세트 같은 밥상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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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회무침
    문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종합선물세트의 첫 주인공, 멸치회무침이 나왔다. 붉은 색감에 새콤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면서 에피타이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살이 무른 멸치를 생으로 무칠 때는 초맛이 강해야 감칠 맛이 나거든예.”

    새콤달콤하게 입맛을 당기며 부드럽게 녹듯이 넘어가는 멸치회 맛이 독특하다. 톡 쏘는 맛이 여느 식초와는 다른 듯하다 했더니, 막걸리 식초를 쓴다고 한다. 멸치회란 게 먹다 남은 생멸치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역시 마시다 남은 막걸리에 담가뒀다가 생긴 요리라는 그럴듯한 유래담이 손님들 사이에 오고 간다. 남길 게 뭐가 있나, 5월 봄밥상에 나온 멸치회 접시는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아쉬운 마음으로 모두들 젓가락을 내려놓는데 뜨겁게 김이 오르는 멸치조림냄비가 등장했다.

    “상추에 멸치조림을 얹고 된장이나 젓장을 발라 싸드셔 보이소. 비린내 걱정 마시고. 남해 마늘이 비린내 잡는 데 한몫하거든예.”

    도시사람들은 자주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주인장이 먹는 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손질한 통멸치살을 시래기 위에 올려 바특하게 끓여낸 이 집의 거뭇한 멸치조림은 고춧가루색으로 붉고 맵게 보이는 다른 집 찌개와는 좀 달라 보인다.

    “비린 맛을 잡고 향을 더하려고 하다 보니, 마른 깻잎을 쓰게 됐어예. 묵은지나 김치를 쓰는 집도 있는데, 저는 시래기를 깔고 깻잎, 풋마늘대를 쓰니까 찌개색이 좀 검게 나옵니더.”

    멸치조림 색에 대한 의문을 풀고, 본격적인 맛 보기에 들어갔다. 문 대표의 말대로 멸치 비린내는 온데간데없다. 쌈된장처럼 구수한 맛이 난다. 서해안에 게장이 있다면, 멸치조림은 남해산 밥도둑이라고 할 만하다. ‘맛있다’를 연발하는 식객들에게 양념에 멸치액젓과 매실발효액을 섞어 쓰면 괜찮은 맛이 난다고 요리 팁도 알려 준다. ‘지금 제철이라 싱싱한 생멸치로 쌈밥을 먹을 수 있다지만, 다른 계절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당연히 냉동멸치로 조리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봤다. 문 대표 말로는 겨울철 말고는 남해에서는 냉동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제철 맞은 멸치에 밀려 손이 안 가던 구운 갈치를 뒤적이며 살을 바르던 누군가 갈치는 언제가 제철이냐고 묻는다.

    “지금 드시는 갈치는 제철이라고는 못하지예. 가을이 제철이라 갈치회를 먹으려면 가을에 꼭 남해를 다시 찾아야 합니더.”

    ‘봄 멸치, 가을 갈치’인 셈. 제철 음식 구분이 없어질 정도로 세월이 좋아졌어도 입맛 까다로운 식객에게 제철 이름값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조림냄비도 비어갈 무렵 멸치회무침 한 접시가 다시 나왔다. 웬 서비스냐며 좋아라 하는 손님들에게 문 대표의 말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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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구이

    “저희 집 멸치회무침은 무한 리필입니더.”

    음식점 밥상머리에 앉은 이들에게 이보다 더 기분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나온 접시를 비우고, 또 한 접시를 먹어치운 후에야 부른 배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주산지의 특성을 대변하는 남해 멸치 인심에 부른 배가 더욱 든든해지는 ‘멸치랑 칼치’ 한 상이었다.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주변관광지

    △독일마을= 남해군 삼동면 독일로 64-7. 1960년대 당시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됐던 독일거주 교포들이 우리나라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에서 개발한 곳으로 독일문화와 우리 전통문화 예술촌을 연계한 특색 있는 관광지이다. 독일식 전통 주택으로 지어진 가옥 수십 채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건방조어부림=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태풍과 염해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 길이 1.5㎞, 너비 30m의 반달형 어부림이다.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300년 된 40여 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돼 있다.

    △지족해협 죽방렴= 남해군 창선면 지족리.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 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 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창선교에서 죽방렴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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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치랑 칼치(대표 문태숙)=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126 ☏ 055-867-0028, 010-5541-6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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