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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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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무렵- 성선경

  • 기사입력 : 2015-08-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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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판의 벼 이삭들이 칙칙 밥 익는 냄새를 풍길 때

    가을, 달의 늑골 사이에도 살찌는 소리가 들립니다.

    책장과 책장 사이

    구와 절 사이

    지난여름 내내 압핀에 꽂혀 있던

    검은 귀뚜라미들도

    귀향 귀향

    문득 잠에서 깬 듯 웁니다.

    나는 그만 단풍 같은 책장 덮고

    어머니 하고 불러 봅니다.



    칙칙 김을 내뿜는 압력밥솥같이 둥그런 슬픔

    저 따뜻한 달.

    ☞ 어머니는 사랑에 서투르다. 머리가 커지고 더구나 대학까지 나와 번듯해진 자식들 앞에서 어찌 어떻게 표현할 길 없는 사랑으로 인해 밥을 지으신다. 밥을 권하신다. 이런 세상, 이런 시대에 고봉의 밥을 한사코 퍼 담아 주신다. 고향 툇마루에 이제는 사그랑주머니로 삭아가는 어머니….

    여름을 건너고 단단히 볏모개를 붙든 채 남은 땡볕을 견디는 낟알들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어서어서 따뜻한 쌀밥이 되고 싶은 이삭의 조바심일까? 아니, 그것은 젊은 날 내 어머니의 조바심. 여름내 당신의 땀을 쏟아 부은 들판이 정직한 소출을 낼 때 어머니의 셈 차림 속에서 그것은 벌써 자식의 먹거리도, 입을거리도, 혹은 등록금도 되었던 것. 동동거리던 그 어머니의 모습이 불에 데듯 화들짝 생각난 것은 전혀 귀뚜라미의 탓이다. 칙칙 김을 내뿜는 압력밥솥같이 슬픈, 저 따뜻한 어머니의 사랑! 보름이 가깝다. 성큼, 추석이 다가선다.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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