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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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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추억 레시피 (2) 창원 촌년 서울 적응기

  • 기사입력 : 2015-09-10 14: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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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은 배경음악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군요. 드라마 '응답하라1994' OST에 수록된 '서울 이곳은'이 좋겠어요.

    저는 창원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창원에 살았어요. 몇 번 이사를 하긴 했지만 창원을 벗어난 적이 없었죠.

    그러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자취방 요리사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사적 순간이랄까)

    서울 생활은 그럭저럭 할 만 했답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학교는 다르지만 어쨌든 함께 상경해 각자의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쉬는 날 종종 모여 수다를 떨다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창원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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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친구'가 '뚝불'이라 부르는 뚝배기 불고기.
    전공 수업도 적당히 재밌고, 자체 휴강은 더 재밌는 신입생 시절을 만끽하던 어느 날,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동기들과 세상에서 가장 신중하고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토론 주제는 '점심 메뉴 정하기'.

    각자의 취향이 난무하고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던 그 때, 균형을 깨뜨리던 한 '서울 친구'의 한마디. '야! '뚝불' 어때?'

    잠깐의 정적 끝에 다들 마치 안풀리던 난제를 풀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뚝불'안을 제시한 친구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또 다른 서울 친구는 제 어깨를 툭 치며 '언진아, 어때? 너도 뚝불 괜찮지?' 라고 묻는 겁니다.

    저는 '어…그래…뭐….'라고 일단 성급하게 대답은 했는데, 문제는 제가 '뚝불'이 뭔지를 모른다는 거죠.


    혼자 속으로 뚝불이 과연 뭘까 한참동안 고민했습니다. 차마 물어보질 못했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저는 괜한 열등감 같은게 있었거던요.

    창원도 나름 꽤 큰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창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마치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무시당할 수 있는 여지를 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실제로 무시하거나 그런 친구들은 없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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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수가 보글보글 끓으면 대파와 팽이버섯 투하.
    식당으로 가는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뚝불이 뭐지, 뚝불이 뭘까. 서울에만 있는 음식인가. 좋다고 했는데 내가 싫어하는 거면 어떡하지. 혹시 먹는 방법이 독특하진 않을까. 진짜 온갖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어요. 그런데도 '뚝불'이 어떻게 생겼을지 짐작조차 안되더군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친구가 손을 들고 '여기요. 뚝불 네 개 주세요'라고 외쳤고, 상에는 밑반찬 몇 가지가 놓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김을 내뿜는 뚝배기 네 개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 순간까지도 조마조마 하더군요.

    드디어 '뚝불'의 정체가 밝혀지기 직전!


    막상 제 앞에 놓인 뚝배기를 보니 살짝 힘이 빠졌습니다.

    불고기 전골이더라구요. 한 사람이 먹기 좋게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뚝불은 '뚝배기 불고기'의 준말이었어요.

    자작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후루룩 먹고 나니 든든하더라구요. 괜한 데 힘을 빼서 더 허기가졌는지도 모르겠네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음식, 뚝배기 불고기는 만드는 법도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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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고기에 간장, 다진마늘, 설탕, 맛술 등으로 불고기 양념을 해 둡니다.
    우선 불고기용 소고기(저는 앞다리 살을 썼어요)를 키친타올로 꾹꾹 눌러 핏물을 빼줍니다. 그리고 배나 키위, 파인애플 같은 과일을 조금 갈아 넣고(연육작용으로 고기가 부드러워지죠. 너무 많이 넣으면 고기가 흐물흐물 해지니 적당히!), 다진 마늘, 간장, 설탕, 맛술 등 불고기 양념을 해서 고기를 재워둡니다.(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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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는 채썰고, 대파는 어슷썰기, 팽이버섯의 밑단은 잘라냅니다.
    고기를 재우는 동안 당면을 미지근한 물에 불려놓고, 양파는 곱게 채썰고, 대파는 어슷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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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뚝배기 바닥에 당면을 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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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면 위에 양념한 고기와 양파를 넣고 물도 한 컵 넣어줍니다.
    그리고 뚝배기에 당면을 깔고 양념한 고기를 올리고 채소도 함께 넣습니다. 그리고 자작하게 국물을 내기 위해 육수나 물을 적당량 넣습니다. 물을 넣으면 간이 안맞을 수도 있으니까 저는 간장이랑 설탕을 조금 더 넣습니다. 그리고 끓입니다. 보글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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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 좋은 음식은 한 번 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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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한 술 떠서 국물에 푹 담근 뒤 고기와 양파 당면과 함께 한 입.
    한소끔 끓이다 대파와 팽이버섯을 올려주고 조금 더 끓인 뒤에 드시면 됩니다. 밥 한 공기 뚝딱. 달달한 국물에 고기 얹어 먹다보면 사실 두 세공기는 우습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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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사람들에게만 뚝배기 불고기와 흰 쌀밥 한 공기가 보일겁니다.(죄송. 흥분해서 손이 떨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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