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추억 레시피 (2) 창원 촌년 서울 적응기
- 기사입력 : 2015-09-10 14: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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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은 배경음악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군요. 드라마 '응답하라1994' OST에 수록된 '서울 이곳은'이 좋겠어요.
저는 창원에서 태어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창원에 살았어요. 몇 번 이사를 하긴 했지만 창원을 벗어난 적이 없었죠.
그러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자취방 요리사의 탄생을 예고하는 역사적 순간이랄까)
서울 생활은 그럭저럭 할 만 했답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학교는 다르지만 어쨌든 함께 상경해 각자의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쉬는 날 종종 모여 수다를 떨다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창원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서울 친구'가 '뚝불'이라 부르는 뚝배기 불고기.
토론 주제는 '점심 메뉴 정하기'.
각자의 취향이 난무하고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던 그 때, 균형을 깨뜨리던 한 '서울 친구'의 한마디. '야! '뚝불' 어때?'
잠깐의 정적 끝에 다들 마치 안풀리던 난제를 풀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고, '뚝불'안을 제시한 친구의 지지율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던 또 다른 서울 친구는 제 어깨를 툭 치며 '언진아, 어때? 너도 뚝불 괜찮지?' 라고 묻는 겁니다.
저는 '어…그래…뭐….'라고 일단 성급하게 대답은 했는데, 문제는 제가 '뚝불'이 뭔지를 모른다는 거죠.
혼자 속으로 뚝불이 과연 뭘까 한참동안 고민했습니다. 차마 물어보질 못했어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저는 괜한 열등감 같은게 있었거던요.
창원도 나름 꽤 큰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은 창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마치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무시당할 수 있는 여지를 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실제로 무시하거나 그런 친구들은 없었지만요)
육수가 보글보글 끓으면 대파와 팽이버섯 투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친구가 손을 들고 '여기요. 뚝불 네 개 주세요'라고 외쳤고, 상에는 밑반찬 몇 가지가 놓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김을 내뿜는 뚝배기 네 개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 순간까지도 조마조마 하더군요.
드디어 '뚝불'의 정체가 밝혀지기 직전!
막상 제 앞에 놓인 뚝배기를 보니 살짝 힘이 빠졌습니다.
불고기 전골이더라구요. 한 사람이 먹기 좋게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뚝불은 '뚝배기 불고기'의 준말이었어요.
자작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후루룩 먹고 나니 든든하더라구요. 괜한 데 힘을 빼서 더 허기가졌는지도 모르겠네요.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음식, 뚝배기 불고기는 만드는 법도 간단합니다.
소고기에 간장, 다진마늘, 설탕, 맛술 등으로 불고기 양념을 해 둡니다.
양파는 채썰고, 대파는 어슷썰기, 팽이버섯의 밑단은 잘라냅니다.
뚝배기 바닥에 당면을 깝니다.
당면 위에 양념한 고기와 양파를 넣고 물도 한 컵 넣어줍니다.
맛 좋은 음식은 한 번 더 촬영.
밥을 한 술 떠서 국물에 푹 담근 뒤 고기와 양파 당면과 함께 한 입.
착한사람들에게만 뚝배기 불고기와 흰 쌀밥 한 공기가 보일겁니다.(죄송. 흥분해서 손이 떨렸네요.)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언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