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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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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원 ‘세스페데스 공원’ 조성 논란

“임진왜란 때 왜군 따라와…조선인에게 포교한 기록 없어”
“예수회 명령으로 선교 위해 파견…복음전파 기록에 있어”

  • 기사입력 : 2015-12-0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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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0일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개장한 세스페데스 공원.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지난달 30일 ‘세스페데스 공원’이 조성됐다. 창원시는 서양인으로는 처음(1593년 12월)으로 조선땅(진해구 사도마을)을 밟은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Gregoria de Cespedes, 1552~1611년)의 역사적, 문학적, 교회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왜적의 신부’를 기리기 위한 공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스페데스 ‘종군신부’ 주장= 이날 창원시청 ‘시민의 소리’ 게시판에는 ‘왜적 신부 세스페데스 공원 조성…한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오늘 왜적의 신부 세스페데스 공원을 조성한다고 들었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임란 때 조선 사람을 무참하게 학살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미사를 하기 위해 조선에 쳐들어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세스페데스는 우리 조선사람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조선 영토를 유린하고 학살을 자행한 왜적을 위해 기도했다”고 주장했다.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유철 시인은 “창원시가 세금을 들여 세스페데스 공원을 조성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1년 넘게 머물렀던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인에게 포교했다는 기록이 없어 천주교 내에서도 논란이 있고,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리려면 수도회 등에서 하면 될 것인데 창원시가 앞장서는 이유를 모르겠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피해를 가장 많이 입었던 웅천지역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군신부’는 왜곡된 주장= 반면 지난 1987년 ‘한국방문 최초 서구인:세스페데스’와 2011년 ‘16세기 서구인이 본 꼬라이’를 쓴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전 총장은 세스페데스가 종군신부가 된 데에는 역사적 왜곡이 있다고 반박했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에 관해 1930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임진왜란 중 조선 진영에서 발송한 예수회 선교사 세스페데스의 서간문 연구’를 보면 세스페데스를 일본군의 ‘종군신부’라고 단정지었는데, 이것이 세스페데스 신부 방한의 복음 전파 노력을 왜곡시킨 시초라는 것이다. 이 논문을 1964년 한국의 김양선 목사가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해 ‘임진왜란 종군신부 세스페데스의 내한 활동과 그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냈으며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왜곡된 역사가 마치 정설인 양 간주되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 땅에서 쓴 4통의 서간문을 보면 조선에 선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수회의 명령에 따라서 파견된 그를 일본군의 종군신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사 왜곡이다”며 “세스페데스 신부는 가토 기요마사의 호전적 태도와 무분별한 파괴 행동을 비난하면서 이를 고발하는 내용의 편지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또 “1년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세스페데스와 그의 동료 예수회 신부들은 수백명의 조선인 포로들이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노예로 매매돼 유럽으로 팔려가는 것을 적극 막았다”고 강조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세스페데스 신부는 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을 따라 조선으로 들어왔지만, 그것은 한낱 동기에 지나지 않으며, 그가 한국에서 남긴 기록들은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매우 귀중한 자료다”고 밝혔다.
     
    글·사진= 고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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