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시 곳곳 살아 숨쉬는 천재 건축가의 위대한 유산

  • 기사입력 : 2016-03-30 22:00:00
  •   
  •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야간버스였다. 스페인 고속기차 ‘렌페’를 이용하면 약 3시간 만에 도착을 하지만 기차 티켓 가격이 버스표 가격의 3배나 되니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불편한 좌석에서 힘들게 8시간을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지새우다 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이 온통 붉은 색이다. 구름과 태양이 서로 엉키듯 섞여서 하늘에 붉은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찬란한 붉은 하늘이 나를 맞이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다운 하늘색이었다.
    메인이미지
    동화 속 과자집처럼 아름다운 구엘공원.

    운 좋게도 얼리 체크인이 돼 숙소에 도착을 하자마자 그대로 뻗어 버렸고 느지막이 오후쯤 일어나서 거리로 나가보니 엄청난 인파가 람블라스 거리에 있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콜럼버스 기념탑이 있는 항구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1km 정도의 거리. 아침시간 람블라스 거리에는 새 시장과 꽃 시장이 들어서는데 여행 중이지만 줄지어 있는 꽃 좌판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무심하게 포장해주는 꽃다발을 사 현지인 흉내를 내보기도 하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보케리아 시장에 들러 과일을 구입해 부족한 비타민을 충전하기도 했다.

    넓은 보행자 도로 옆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고 수많은 거리 예술가들이 여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얼핏 보면 동상처럼 보이지만 동전을 던져주면 갑자기 움직여 여행객들을 소스라치게 놀래키곤 했다. 나도 악마 코스프레를 한 동상 앞에서 1유로를 기부하고 기념 촬영을 했는데 갑자기 날개를 펴고 움직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다들 놀라는 모습에 괜히 오버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기막힌 타이밍에 움직여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역시 예술가는 예술가였다. 람블라스 거리 노천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해도 좋고 생동감 넘치는 람블라스 거리를 산책하는 것도 좋고 람블라스 거리 끝 콜럼버스 기념탑 전망대에 올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르셀로나 전경을 보는 것도 좋다.
    메인이미지
    130년 넘게 지어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지만 기부금만으로 지어지고 있어 정확한 완공 시기는 알 수 없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올림픽과 축구지만 스페인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빼놓고 바르셀로나를 이야기할 순 없다. 사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던 건축가 가우디를 바르셀로나에서 알게 됐고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내내 가우디와 함께한 여행이 돼 버렸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더라도 가우디가 건축한 건물을 바르셀로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별한 지식이 없더라도 가우디 건축물 앞에 서게 되면 조금은 생소한 외관에 발길을 절로 멈추게 된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 속에 들어서면 가우디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는지 저절로 이해가 됐다. 그의 작품이 대단하다고 설명을 듣고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눈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마음에서 그가 천재임을 느끼게 해줬다.

    메인이미지


    가우디가 설계한 고급빌라 ‘카사밀라’ 앞에 섰을 때 정말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빌라라고 하기엔 발상이 너무 기발하고 재미나고 이쁘기까지 했다. 물결치듯 구불구불한 외관과 동굴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입구도 신선했는데 카사밀라의 매력은 건물 옥상에 있었다. 건물의 환기구 모양이 중세 기사 같기도 했고 우주인들의 얼굴 모양 같기도 했다. 스필버그 감독의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국의 군사들 얼굴이 바로 이 카사밀라 환기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거라고 했다. 하나하나 다른 개성을 가진 환기구 모습에 넋을 잃기도 난생처음이었다.

    메인이미지
    가우디가 산을 주제로 설계한 빌라 카사밀라.


    카사밀라는 시작에 불과했다. 가우디의 역작 구엘공원에 갔을 때는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 과자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공원의 제일 꼭대기에는 색색의 모자이크 타일로 디자인된, 세상에서 가장 긴 의자일지도 모르는 벤치가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강렬한 지중해의 태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의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고 여행객들은 그 속에서 가우디의 흔적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던 그 모습이 뭉클하게 느껴졌다.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을 보러온 여행자에게는 특별한 공간으로,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에게는 휴식의 공간으로 여행객과 시민이 한 공간에서 함께 즐기는 그 모습이 그냥 좋았다. 이렇게 멋진 공원을 가진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부러워졌다.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랜드마크가 그들에겐 일상을 보내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잘 만들어졌고, 또 잘 사용되고 있는 구엘 공원이었다.

    바르셀로나 여행 시 시간이 없어 단 한 곳만 가야 한다면 그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다. 1882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세기가 흘렀지만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고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기념해 2026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기부금만으로만 지어져 1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곳. 하늘을 찌를 듯한 외부 모습도 멋졌지만 나를 더 감동시킨 것은 성당 내부였다. 창문 너머 태양빛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반사돼 황홀한 조명이 되어 나를 향해 비추는데 현실 속이 아닌 듯한 착각을 받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전모를 쓴 수많은 사람들이 내부 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행 중에 제일 상심할 때가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간 곳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을 때이다. 사진을 찍어도 만족스럽지 못해 억울하고 화가 나기 마련인데, 세상의 모든 랜드마크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공사를 하고 있어도 감동을 주는 곳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아닐까? 가우디의 작품을 보러 갔는데 작품활동까지 관람할 수 있는 곳. 사진 찍는 관람객들 한쪽에 가우디의 정신을 이어받아 새로움을 불어넣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덕에 내일은 또 다른 모습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모습이 될 것이다. 가우디의 작품이지만 가우디의 작품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노력이 살아 숨쉬는 미완의 현재형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오늘날의 가우디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다.

    메인이미지
    음악과 빛이 어우러진 몬주익 분수쇼.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밤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장소는 마법의 분수쇼다. 에스퍄냐 광장에서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분수쇼가 열린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하늘 위로 솟아오르던 분수들의 춤사위. 음악의 템포가 빨라지면 물줄기도 격해졌고 음악이 느려지면 분수의 물줄기도 느려지고 가늘어졌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 물줄기들이 좌우로 살랑살랑 움직이며 음악과 한몸인 듯 움직였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면 분수의 모습이 연상됐고, 춤을 추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지금 나오는 음악을 귀를 막고도 알 수가 있었다. 음악에 취해 아름다운 조명에 취해 신명나게 춤사위를 벌이는 분수쇼에 취해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 혼자 다닌 여행인지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고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진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 앞에선 내가 이래서 지금 여행을 하는구나. 내가 지금 행복하구나. 이런 감정들이 마구마구 솟아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하더니 지금 이 순간이 그러했다. 만약 내가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경험은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스페인에 다시 가게 되겠지.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다시 가야 할 이유를 바르셀로나에 남겨 두고 왔다.


    여행 tip

    △몬주익 분수쇼는 메인 분수대보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카탈루냐 미술관 광장까지 올라가서 보는 것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

    2016년 스케줄: 4~5월 금·토 밤 9:00~10:30/ 6~8월 목~일 밤 9:30~11:30/ 9~10월 금·토 밤 9:00~10:30/ 11~12월 금·토 밤 7:00~8:30

    aa.jpg
    △박미정

    △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 카페 '소금사막' 대표.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