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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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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7) 덕평남릉의 원통암과 허정 좌선대, 선비샘

서산대사는 원통암서 어떤 깨우침 얻었을까

  • 기사입력 : 2016-04-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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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겨울의 끝을 알리듯 섬진강변에는 하얀 매화꽃이 만개했고 회색빛 들판에도 녹색물결이 점차 번져가고 있다. 탐방팀은 봄기운을 가득 느끼며 섬진강변의 아름다운 길, 19번 국도를 달려 화개장터를 돌아 화개골로 접어든다. 쌍계사 십리벚꽃길을 지나고 청정계류 넘쳐흐르는 화개천변을 호젓하게 달려 의신마을에 도착한다. 하동군 화개면의 지리산 덕평봉 남사면 끝자락에 위치한 의신마을, 이번 탐방산행 기점이다. 오늘은 덕평봉 자락에 자리 잡은 서산대사가 출가했다는 원통암을 돌아보고, 덕평남릉 상부의 덕평습지와 허정의 좌선대. 그리고 선비샘을 탐방하는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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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평봉 남사면 해발 650m 고지에 자리 잡은 암자 ‘원통암’. 서산대사가 이곳에 출가해 주변 암자를 돌며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탐방팀은 의신 지리산 역사관 앞을 출발해 원통암으로 향한다. 의신에서 원통암까지는 0.9km. 마을 골목길을 지나 산골짝으로 접어든다. 꽃샘 추위로 손, 귀가 시리고 땅은 꽁꽁 얼어붙었지만 개울가에는 맑은 물이 청아하게 재잘거리고, 개울가 버들강아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꽃망울을 맺었다. 산골짝을 오르길 50여 분, 온몸에 열기가 퍼지고 등에 땀이 맺힐 즈음 원통암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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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평남릉과 덕평봉.


    ▲서산대사 출가지 원통암

    원통암은 덕평봉 남사면 해발 650m 고지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다. 화개동천과 섬진강 너머 백운산을 바라보며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서산대사 출가지로 그 의미를 더하는 원통암, 이른 아침 불청객은 조심스럽게 조용히 경내를 둘러본다. 원통암은 신라말 고려초에 창건된 암자로 의신마을 부근에 있던 의신사 31개 산내암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지금은 의신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암자는 사라지고 원통암만 유일하게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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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대사 영정.


    아침 햇살이 들기 시작하는 경내의 뜰과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 산객의 마음마저 정갈해지는 분위기다. 뜰 앞의 조망도 좋다. 화개동천을 사이에 두고 산 꼬리가 굽이친다. 남부능선에서 뻗어 내린 지네능선과 토끼봉 지능 범왕능선이 서로 꼬리를 겹치고 그 뒤로 섬진강 넘어 백운산 능선이 겹쳐진다. 암자 뒤의 산신각을 둘러보고 청허당의 서산대사 영정도 배알한다. 금방 번질 듯 염화미소를 머금은 영정 모습에 산객의 마음은 경건하고 편안해진다.

    서산대사(1520~1604)는 1534년 원통암에 출가해 이곳 주변 암자를 돌며 수도했다. 대사는 두 차례에 걸쳐 18년간 지리산에 머물렀다. 지리산에서 도를 깨쳤고 금강산에서 수양하고 묘향산에서 제자를 길렀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을 조직하여 전쟁에도 참여했고, 사명대사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삼가귀감을 저술하는 등 조선불교 중흥에 크게 기여했다.

    ▲산너울 굽이치는 덕평남릉의 시원한 조망

    채미밭 옆, 그 옛날 서산대사가 마셨을 청량수 한 모금 들이켜고 산문을 나서 능선을 향해 오른다. 군데군데 등로가 희미하고 가파른 곳의 낙엽 길은 눈길보다 더 미끄럽다. 원통암에서 40여 분, 한바탕 힘을 쏟은 끝에 덕평남릉에 올라선다. 사거리 갈림길이다. 반대편 사면으로도 길이 보인다. 작은 세개골로 내려서는 길이다. 잠시 쉬었다가 선비샘을 향해 본격적으로 덕평남릉을 타고 오른다. 덕평남릉은 덕평봉에서 대성골과 화개천 합수부 지점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다. 응달에는 아직도 눈밭이다. 도덕봉 가기 전 바위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해 본다. 위쪽으로 도덕봉 주변 암봉군이 보이고 서쪽에는 주능선이 한눈에 든다.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그리고 바로 앞에는 하산할 오토바이능선이 뻗어 있다. 그 뒤로 범왕능선, 불무장등, 왕시루봉 능선이 조망된다. 잠시 시원한 조망을 즐기다가 도덕봉을 향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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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평남릉 산죽길.


    도덕봉 자락, 여기도 온통 눈이다. 등로는 도덕봉을 우회하지만, 도덕봉에 올라본다. 눈이 쌓여 오르기 쉽지 않다. 해발 1162m의 도덕봉은 조망 암봉이다. 도덕봉에 올라 덕평봉과 덕평남릉, 주변지능과 골을 조망해 본 후, 다시 남릉 길을 이어간다. 도덕봉을 지나 30여 분, 등로 우측으로 나타나는 조망바위, 그곳에도 올라 지나온 덕평남릉을 조망해 본다. 동쪽으로 작은 세개골, 선비샘골, 칠선봉과 칠선남릉, 영신봉과 남부능선이 조망된다.

    ▲허정의 움막터와 단애의 좌선대

    조망바위를 지나 한 차례 땀을 쏟은 후 덕평습지, 허정 좌선대 갈림길에 도착한다. 의신에서 3시간 30분가량 소요됐다. 좌선대와 습지를 탐방키로 하고 먼저 허정 좌선대를 다녀온다.

    완만한 언덕, 짧게 자란 산죽지대를 잠시 오르면 허정의 움막터가 있다.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었던 작은 움막은 지난 세월을 얘기하듯 삭아서 폭삭 내려앉았다. 움막을 지나 비탈을 조금 내려서면 허정이 기도하던 좌선대가 있다. 작은 돌출지능의 끄트머리 절벽 위 암반이다. 지형지세가 절묘하다. 산객의 접근이 어렵고 세상과 차단된 느낌, 절해고도의 분위기다.

    허정은 주변에 움막을 짓고, 매일같이 좌선에 들었을 것이다. 허정의 그 자리에 앉아본다. 지리산 기인 허정의 고행정진과 진한 고독이 느껴진다. 그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고 이름과 좌선의 흔적만 남겨둔 채 미련 없이 세상 속에서 사라져갔다.

    좌선대의 운치 있는 분위기가 좋아 한동안 머물다가 사거리 갈림길로 되돌아 나온다. 왕복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다. 반대쪽의 덕평습지도 탐방한다. 평편하게 습지가 형성돼 있다. 눈이 덮여 분간이 잘 안 되지만 땅은 온통 물기를 머금고 있고, 얼음도 얼었다.

    습지는 봄, 여름철이 돼야 제대로 식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좌선대와 습지 탐방을 마친 탐방팀은 최종목적지 선비샘으로 향한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등로가 아주 좋다. 사철 푸른 잔디처럼 산길을 뒤덮은 녹엽의 산죽은 산행 분위기를 더욱 싱그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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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의 좌선대.


    ▲화전민 이씨노인의 한과 선비샘

    습지 사거리에서 30여 분, 선비샘에 도착한다. 의신에서 4시간 30분 소요됐다. 이씨 노인에게 절하듯 허리를 굽혀 물맛을 본다. 차갑고 청량한 물맛이 피로를 앗아간다. 탐방팀은 오늘따라 적막한 선비샘 주변을 둘러본다. 화전민 이씨 노인의 가묘, 돌무덤도 돌아보고, 그의 애환도 생각해본다.

    안내 간판에는 선비샘의 유래가 적혀 있다. 옛날 덕평골 화전민 이씨 노인은 평소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살았는데 죽어서라도 존경을 받고 싶은 마음에 자식들에게 자신을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노인이 죽자 자식들은 샘터 위에 묘를 만들었다. 샘터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은 고개 숙여 물을 마시니, 무덤에 절하는 형상이라 죽어서 존경 아닌 존경을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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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샘.


    살아생전 얼마나 천대와 멸시를 받았으면 죽어서라도 억지 존경을 받고 싶어 했을까. 그 한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그를 선비 대접하듯 묘 아래 샘 이름도 선비샘이라 불러주며 그의 한을 풀어주고 있다.

    선비샘(해발 1443m)은 오늘 탐방산행의 최고점으로 지리산 주능 길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벽소령과 칠선봉 사이 덕평봉 자락의 선비샘, 사시사철 맑은 물이 쏟아져 나와 목마른 산객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는 선비샘에서 한동안 쉬며 휴식을 취했다가 오토바이능선을 걸어 의신마을로 하산한다. 이씨 노인의 부질없는 생각과 허정의 고독을 새삼 떠올려 보며….

    김윤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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