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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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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간 이식한 농구 유망주… 마산고 손태한군

“아버지, 수술해요. 운동 안 하면 어때요”
농구선수 꿈 접고 간경변 말기 아버지에 간 이식해줘

  • 기사입력 : 2016-05-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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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등 달력 밑에 작은 글씨가 가슴을 짓누른다.

    부모와 자식은 거울에 투사된 나를 가장 많이 닮은 ‘다른 나’다. 아버지와 아들은 특히 그렇다. 아들이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 두 사람은 말도 별로 없다. 그냥 몸짓과 눈빛으로 소통할 뿐이다.

    손수민(46·창원시 마산합포구)씨와 아들 태한(17)군도 그랬다. 하지만 고통을 함께 나눈 후 부자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아들은 간경변 말기로 생사의 기로에 선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을 아버지에게 떼어 줬다. 농구 유망주였던 아들은 선수의 꿈을 접었다.

    4일 태한군이 다니고 있는 마산고등학교 교정에서 부자를 만나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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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경변 말기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한 손태한(마산고 2학년)군이 4일 오후 아버지 손수민씨와 밝은 표정으로 마산고 교정을 걷고 있다./김승권 기자/

    ◆손을 먼저 내민 아들= 건설업에 종사하며 쌓인 업무 스트레스와 과음이 원인이었다. 아버지 손수민씨는 지난 2009년 4월 간경변을 진단받았다. 고단한 투병생활에 심신은 지쳐갔다. 통원 치료와 입원을 반복하며 하루에 먹는 약만 30알, 1년 중 6개월 이상은 병원신세를 졌다. 가뜩이나 자식에게 엄했던 그였다. 성격은 점점 예민해졌고 아들과 대화도 줄었다.

    “간경변 말기입니다.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2015년 8월, 손씨에게 청천벽력같은 선고가 떨어졌다.

    눈앞이 깜깜했다. 의료진은 검사 결과, 아들 태한군의 간 이식이 적합하다고 했다. 하지만 간 기증을 하기엔 태한군의 나이가 어렸다. 통상적으로 간 기증을 하기 위해 만 16세는 넘겨야 한다고 했다.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들까지 위험해진다.’ 아버지는 수술을 반대했다. 더군다나 키가 195㎝인 아들은 농구선구가 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부였던 아들은 수술을 하게 되면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아버지, 수술해요. 농구선수 안 하면 어때요.”

    ◆함께 나눈 고통= 한 해를 넘긴 지난 1월 15일, 드디어 수술이 끝난 후 아버지와 아들은 각각 다른 병상에 입원했다. 이식 수술은 으레 기증자와 이식자 모두에게 수술 후에도 며칠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보름 가까이 24시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고통이 밀려왔다.

    손씨는 3일째 되는 무렵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보다 더한 고통이 밀려왔다. ‘내 아들도 이렇게 아픈 것이 아닌가.’ 겨우 기운을 내 아들의 병실을 찾아 고통에 힘겨워하는 아들을 보았다. 손씨는 아들의 병상 옆에 누워 말없이 손을 꼭 잡았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는 존재의 이유= 의료진은 태한군이 간 기증자로서는 최연소 나이라고 했다. 자신의 간 70%를 떼어 아버지에게 준 태한군은 간 조직이 재생되기는 하지만 평생 농구와 같은 격한 운동을 할 수 없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해온 농구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태한군은 지금 여느 때보다 밝다.

    “수술 후 아버지와 관계가 더 좋아졌어요. 아버지의 모든 상황이 이해돼요.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아버지는 나를 존재하게 한 이유잖아요. 부디 더 회복해서 건강하세요. 아버지가 건강해야 가족이 건강하죠. 사랑합니다.”

    부자는 약속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면 둘만의 여행을 떠나기로. 아들과 아버지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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