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 - 장석남
- 기사입력 : 2016-05-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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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감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도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헌칠한
물맛
물맛을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 먹고 싶다는 시인의 말에서 未堂 서정주의 명구들이 떠오른다. 마음에 익힌 물맛을 사랑에 써 먹을 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라는 미당의 구절이 탄생한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물맛을 죽음에 써 먹을 때, “내 영원은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의 길이로라”는 미당의 시구가 태어난다. 마지막 연에서는 미당조차 놀랄 것이다. ‘헌칠한’ 물맛이라니! 모국어의 경이로운 조합이다. 이중도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