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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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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암벽 등반 개척자 안성민 씨

“따라가지 않고 만들어 가는 것, 개척자의 길이죠”
군대 전역 후 30년간 ‘청람산악회’서 활동

  • 기사입력 : 2016-07-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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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성민(52)씨의 오른팔이 실내 암벽 등반장 벽에 붙어 있던 홀드를 움켜쥐자 숨어있던 아래팔 뒤 근육과 핏줄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팽창했다. 안씨는 자신의 어깨높이보다 높은 곳에 있는 홀드를 향해 왼쪽팔을 뻗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신중했고 진지했다. 양팔은 키 170cm, 몸무게 63㎏이 나가는 50대 남성의 몸을 온전히 지탱했다. 안씨가 팔을 뻗을수록 처음에 품었던 불안감은 점점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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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람산악회로부터= 암벽 등반가인 안씨는 지난 1986년 군대를 전역하고 청람산악회에 입회해 본격적인 산악인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혼자 인근 산을 돌아다니는 것을 취미 삼아 했지만, 안씨의 내면에서는 항상 전문 산악인의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안씨가 입회한 청람산악회는 지난 1978년 마산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된 산악회로 20여명의 회원이 수십 년째 활동하고 있다. 일반 산악회와는 달리 등산뿐만 아니라 암벽등반, 해외 원정 등반도 하는 등 굵직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안씨가 청람산악회를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안씨는 “청람산악회에 입회할 당시 친구 3명과 함께 갔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친구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죠. 한 친구는 청람산악회 회장도 하고 있습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멀티클라이머 안성민씨= 안씨는 등반 동호회에서 멀티클라이머로 불린다. 암벽 등반의 종류인 자유등반(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능력만으로 암벽을 오르는 등반 형식)과 인공등반(신체의 기능 이외에 인공적인 보조 수단을 이용해 오르는 등반 방식), 볼더링(bouldering :암벽 등반의 한 장르로 로프 없이 바윗덩어리를 오르는 행위)뿐만 아니라 빙벽등반, 고산등반 등 다양한 분야를 모두 섭렵했기 때문이다.

    “다 할 줄은 안다는 말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죠”라며 안씨는 쑥스럽게 웃었다.

    멀티클라이머인 안씨, 무엇보다 안씨만의 특별한 장점은 바로 암벽 등반로를 개척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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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벽 등반 개척자 안성민씨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실내암벽장인 크럭스 클라이밍에서 암벽타기 연습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클라이머를 넘어 개척자로= “암벽을 오르는 것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합니다. 실수를 용납할 수 없죠. 한 번의 실수에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정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에요. 암벽 등반 개척도 마찬가지예요”

    개척자는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 나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안씨는 개척자다. 누군가 이전에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기보단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개척 등반인이다. “암벽 등반 개척은 정말 설레는 일입니다. 위험할 때도 있지만, 모험이라는 것이 항상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요?”

    안씨는 창원지역에서 4개의 암벽 등반 코스를 짰다. 팔용산 팔용계곡 코스 2개, 지금 두산중공업 인근에 위치한 꼬시락바위 코스 2개 등을 개척했다. 하지만 암벽 코스 4개 모두 높이가 2P(40~60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마음속에는 항상 더 높은 암벽 등반 코스를 짜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안씨는 “우리 도내에도 다른 지역이나 외국처럼 높이가 긴 암벽 등반 코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항상 가져왔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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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민씨가 함안군 상대미 바위에서 암릉 등반 코스를 짜고 있다.


    ◆생애 5번째 암벽 등반 코스 작업= 안씨를 포함한 청람산악회 회원 27명은 지난 2014년 봄부터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 상대미 바위에 암릉 등반 코스를 짜고 있다. 1년 반이나 진행된 작업이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걸어서 30분 정도에 이르는 등산로 개척부터 8P(약 240m)에 이르는 암벽 등반 코스 2개를 만들어야 하는 대작업이다. 회원들은 주말에 짬을 내 작업을 해왔다. 안씨는 개척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청람산악회는 올해 안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안씨는 “암벽 등반 코스가 240m 정도에 이르기 때문에 굉장히 긴 편이다. 암벽까지 접근하기도 쉽고. 도내에서 가장 긴 코스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암벽 등반 개척자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등반 코스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 안씨는 이미 이름을 정해두었다. 코스 1개는 산악회 이름을 따 ‘청람길’로, 다른 1개 코스는 ‘동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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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동료 황동진씨를 위해 만든 마산 무산학 돌비석.


    ◆죽은 동료 이름으로 지은 ‘동진길’= 황동진. 그는 지난 2008년 7월 김재수 원정대장이 이끄는 K2 원정대 소속 산악대원 중 한 명이자 청람산악회 회원이었다. 황씨는 7월 30일 네팔 히말라야 K2봉(8611m)을 등정하고 내려오던 중 ‘보틀넥(Bottle neck)’이라 불리는 얼음협곡지대(8211m)에서 다른 대원 2명과 함께 조난됐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동진길은 2008년 K2 조난 사고에서 돌아오지 못한 황동진 대원을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아직도 그의 시신은 돌아오지 못했지만, 이름은 기억될 것입니다”

    30일 청람산악회는 황동진씨의 9주기를 맞아 마산 무학산 서원곡 무학폭포 인근에 세워진 황동진씨의 캐른(Cairn·돌비석) 앞에서 추모식을 하기로 했다.

    “암벽 등반을 하거나 암벽 등반로를 개척할 때면 평소에 쑤시고 아프던 몸도 이상하게 아프지 않아요. 굉장히 고단하고 힘든 일이지만,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을 보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라고 안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휘훈 기자 24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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