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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경주! 기억의 저편

  • 기사입력 : 2016-09-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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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2년간 신라의 찬란한 수도였던 경주가 몸살을 앓고 있다. 400여 차례 이어지는 여진의 후유증으로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근 학교에서는 이미 경주로 계획돼 있던 수학여행 장소를 변경하거나 일정을 바꾸느라 분주하다. 1400년 전 만들어진 국보 제31호 첨성대가 이번 지진으로 2㎝ 더 기울어졌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경주에 얽힌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꼭 이맘때쯤이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을 실은 버스가 창원터널을 막 벗어났을 때의 일이다. 차 안의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속이 좋지 않아 큰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한 학생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차는 계속 달렸고, 수학여행에 들뜬 기분은 우리의 후각을 점점 무디게 해 줬다. 목적지인 경주! 첨성대와 천마총, 그리고 불국사에 도착하기까지 우리 반이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미풍에 실려 오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지만 상처받지 않고, 눈치채지 않게 의문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평소 내성적이면서도 모범적이던 송이가 눈에 띈 것은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송이의 곁에는 마치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듯 냄새까지도 감수하며 한시도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있어 기회 포착이 어려웠다. 꾀를 내었다. 불국사를 향해 학생들과 비탈길을 함께 오르던 나는 다급한 소리로, “송이야, 선생님이 버스 안에 중요한 것을 두고 왔어. 어쩌지? 송이가 나랑 같이 갔다 올래?”

    그렇게 우린 가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고 곧장 공중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물기 머금은 그의 청바지는 빨수록 더 뻣뻣해져서 수습이 어려웠고, 결국은 대기해 있던 교감선생님이 택시를 타고 새 청바지를 사 오는 타이밍과 학생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우리의 임무는 완전범죄(?)로 완벽하게 종결됐다. 마침내 송이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고, 우리 반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여행의 즐거움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 학생들의 일기 어디에도 냄새에 대한 주제는 없었으며, 그 일을 거론하는 학생 또한 한 명도 없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친구와의 의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합동 공작이 완벽해서였는지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의 교감선생님은 퇴직을 하신 지 오래됐고, 송이는 두 아이의 학부모가 돼 있다는 것만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갈수록 더해지는 불안과 스트레스에 대적하기 위해서 건축물 내진설계 의무대상 확대도 필요하고, 생존 배낭도 중요하지만, 강도 5.8 그 이상의 강한 지진을 만나도 흔들림 없는, 힘든 좌절에도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할 수 있는 튼튼한 내진설계를 지닌 사람들이 더 절실한지도 모른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인간관계, 우정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으리라.

    “내 아이는 내진 설계가 됐을까?” 이 기회에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박영선(창원 대방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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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선 (창원 대방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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