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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 - 문희숙

  • 기사입력 : 2016-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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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에 중독된

    그의 집은 벼랑에 있다

    안개의 높이에서

    뭉툭해진 저 발굽

    비탈이 깎아 세운 불안은

    그의 생을 가둔다



    양삭에서 계림까지

    날개 없는 흰나비

    마른 바윗길

    삶의 은유도 지칠 무렵

    배고픈 짐승 한 마리

    공중에서 부양 중이다

    ☞ 제 일터로 종종 다양한 책이 배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을 일일이 정독하여 읽어낼 시간이 없음은 일터의 특성상 매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읽게 된 시집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지금 우리나라를 떠나 살고 있기도 한 데다, 등단하고서 무려 20년 만에 첫 시집을 냈다고 하니 그간의 안부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다가 이 시를 발견하곤 문득 얼마 전에 다녀온 실크로드 여행지에서 만난 산양이 떠올랐습니다. 여행 마지막 도착지였던 우루무치에 있는 톈산산맥으로 불리는 천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알프스형의 산맥으로 경사가 매우 가파른 산입니다. 또 산등성이가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사이의 국경을 따라 뻗어 있어 어디에서나 만년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톈산산맥의 최고봉 높이가 7439m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며 걷다가 바라보는 계곡과 봉우리들은 아찔하면서도 그지없이 아름다웠습니다. 그 언저리들쯤에서 빙하가 녹은 물로 목을 축이는데 저를 내려다보고 있던 산양을 마주하곤 깜짝 놀랐습니다만, 그뿐이었습니다. 무심히 제 가족들을 데리고 가버려 놀람은 순간으로 끝났습니다.

    산양은 주로 경사가 높고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에서 서식하는데 몸이 암벽의 색과 비슷합니다. 시인의 말대로 산양은 벼랑이 집이고 뭉툭해진 발굽으로도 식솔들을 데리고 마른 바윗길을 다닙니다. 이렇듯 아무리 팍팍한 현실이고 ‘삶의 은유가 지칠 무렵에라도 공중에서 부양 중’인 자세로도 살아내고 있는 산양처럼, 시인처럼, 우리도 이 시대를 지혜롭게 건너가야 할 것입니다. 정이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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