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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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예담] (37) 윤회성 서양화가와 마창대교

해질녘 도시의 쓸쓸함이 차곡차곡 쌓인 기억 속 풍경
미술 강의하러 가는 길목
마창대교를 이용하는 윤 작가

  • 기사입력 : 2016-12-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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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숙한 장소에는 기억이 있다. 늘 오며 가며 보는 풍경 속에는 지난 기억들이 두텁게 쌓여 있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흔해서 눈길조차 안 가는 장소일지라도 자신에게는 특별한 곳이 된다. 어떤 장소든 그런 특별한 기억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대학 때 자취하던 곳은 학교의 서문 주변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수많은 원룸, 하숙집, 식당, 편의점이 다닥다닥 모여 있어 마치 개미굴 같았다. 자취방으로 가던 좁은 골목길을 떠올리면 한 겹 두 겹 쌓인 다양한 기억이 머릿속을 채운다. 자주 가던 분식집의 주먹밥 맛, 친절했던 그곳 주인 아주머니의 미소, 시험 때문에 새벽에 집에 가면서 올려다봤던 까만 하늘, 친구들과 토해내듯 뱉던 신세 한탄. 켜켜이 쌓인 기억의 결이 한데 뭉쳐져 독특한 감정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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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회성 서양화가가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에서 마창대교 산책로를 걷고 있다./성승건 기자/

    윤회성 서양화가는 기억 속의 장소, 풍경을 그리는 작가다. 어떤 장소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화폭에 옮긴다. 메시지가 아닌 감정을 담는 작업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전형적인 풍경화와는 다소 다르다.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고 형태만 조금씩 남아 있는 반구상 형식이다. 소재는 주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익숙한 곳을 택한다. 창원에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고 있기에 대부분 창원을 비롯한 도내 곳곳의 풍경들이 그림의 배경이다.

    “제가 그리고 싶은 장소를 주제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립니다. 일종의 ‘풍경 수집’ 작업인데 풍경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제 기억을 바탕으로 그 장소가 주는 느낌을 표현합니다. 다분히 주관적이죠. 정확한 한 지점이 대상이 되지 않고 여러 곳의 풍경이 중첩되는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면 창원 동읍 일대를 그린 작품에는 그곳의 산, 들판, 언덕의 이미지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다. 3, 4학년 때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도, 졸업작품도 추상화였다. 하지만 그는 졸업 후 다시 구상으로 돌아왔다. 왜 그리는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추상작업이 시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이 좋더라고요. 늘 봐 왔던 익숙한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저의 색을 찾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가 작업실에서 세 번째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들을 내보였다. 풍경, 기억, 도시를 제목으로 한 연작들이다. 기억 시리즈 중 작품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마창대교 인근인데,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색채가 없다. 하늘, 어슴푸레 보이는 다리, 땅과 바다가 모두 모노톤으로 표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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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로 매주 한 번씩 미술 강의를 하러 갑니다. 한 5년쯤 됐네요. 갈 때는 꼭 다리를 지나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주로 거가대교를 이용했는데 최근 1년 전부터는 마창대교를 이용하고 있어요. 고성 방면을 지나 통영 국도로 이어지는 코스인데 요즘은 이 길이 더 좋더군요.”

    무채색의 그림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함, 고독함이 묻어난다. 대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느낌은 뚜렷하게 전해진다. 어쩌면 모호하기 때문에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되는지도 모른다.

    “차로 다리를 지나다니며 봤던 풍경, 그때의 느낌을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5년간 수십 번을 지나다니면서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의 총합이죠. 마창대교지만 사실 거가대교의 이미지도 섞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혼자 바깥의 풍경을 보면 이따금씩 고독감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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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오후, 해가 저물 무렵 작가와 함께 마창대교가 잘 보이는 도로변에 섰다. 저녁 어스름이 깔린 커다란 다리 위로 차들이 쉼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활기차지 않았다. 건조하고도 쓸쓸했다. 그가 느꼈을 감정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마창대교를 지나면서 느꼈던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오후 5시쯤 출발해서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깜깜한 밤이 됩니다. 아무래도 해질녘, 밤풍경을 마주하다 보니 좀더 고독한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도시의 풍경이 대체로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구성원들도 부유한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마창대교는 저에게 그런 기억과 인상을 주는 장소죠.”

    그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도 쓸쓸한 느낌이 난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고 덧붙였다. 밝은 색감을 사용한 작품도 그렇다고 했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단다.

    “결혼 전에 그렸던 그림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혼 후에도 여전히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배우자가 있고 없고는 이유가 아닌 것 같고,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차를 타고 마창대교를 지난다. 마창대교를 자주 지나는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출장을 가거나 강의를 하거나 물건을 옮기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 페달을 밟는다. 혹시라도 그 장소가, 그 과정이 조금 쓸쓸하게 느껴진다면 그의 그림이 어떤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그린 이도, 그 그림을 보는 우리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쓸쓸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작은 안도감을 줄 테니까. 마창대교에 대한 기억의 한 페이지에 그의 그림과 다리를 바라보며 나누었던 대화가 깊숙이 뱄다.

    김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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