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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한 사람의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행보를 분리할 수 있을까

책 읽어주는 홍아 (9) 히틀러의 철학자들(이본 셰라트)

  • 기사입력 : 2018-01-26 15: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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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국주의에 부역한 철학자의 철학, 배워야 할까? 난 안 배우련다. 다른 더 좋은 배울 거리가 넘친다.

    2차대전 시기 나치의 만행을 보면 자연스럽게 일제의 만행이 오버랩된다. 우리민족이 제국주의 확장에 따른 피해를 나치의 피해국들 못지않게, 어쩌면 더 가혹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상처는 아직 치료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는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여전히 이광수를 최초의 우리나라 근대소설가라고 배우고 있고 최남선, 노천명 등의 친일 문학가들의 시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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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유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치 치하에서 당시 학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서사적 문체로 표현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내용이 선명하게 전달된다. 책은 히틀러의 사람과 적을 1·2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히틀러의 사람들 중에는 마르틴 하이데거('인간은 던져진 현존재이다.'로 유명한)라는 걸출한 철학자도 포함돼 있다. 히틀러의 적으로는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등 대체로 유대인 철학자들이다. 나치의 통치기간 독일인으로 나치에 저항했던 철학자는 '쿠르트 후버' 한 명 뿐이었다. 이 책은 유명한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어떻게 나치에 충성했는지, 그리고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등의 유대인 철학자들은 어떻게 탄압받았는지 상세히 설명한다.

    1933년 5월 1일 화려한 나치 행사가 있었다. 한 명의 독일 철학자가 그날 나치 당원으로 입당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원번호는 3,125,894번, 마르틴 하이데거였다. 하이데거는 1929년에 걸작 '존재와 시간'을 발간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였다. 히틀러는 나치의 사상적 기반을 만들어줄 '슈퍼맨'이 필요했고, 하이데거는 거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입당한 지 3주 만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임명된다. 이날 하이데거는 군복 차림으로 나치찬양 취임연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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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는 유대인화(Verjudung)에 반대하고 게르만민족의 태생적 우월성을 피력했는데, 이런 반유대주의는 그에게 위태로운 것이기도 했다. 18살 연하이고 자신의 제자였던 한나 아렌트와 불륜관계를 수년간 유지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결국 버리게 되고, 나치의 세계 전쟁을 찬양하고 유대인 학살에 철저하게 눈감았다. 전쟁이 끝나고는 철학적 천재성이라는 그림자에 숨어 처벌도 면하고 천추를 누렸다.

    반면 유대인 철학자들은 하나같이 탄압받으며 힘든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독일에 있었던 유대계 철학자는 발터 벤야민, 테오도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이다. 그들 역시 명성 있는 학자였지만, 나치 체제 아래에서 자신들의 학문적 업적이 인정받을 리가 없었다. 거리에는 독일판 분서갱유(프로이트, 마르크스, 심지어 아인슈타인 책도)가 자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수용소 수감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망명생활과 도망자생활을 한다. 그는 프랑스가 함락된 후 붙잡히게 되는데, 잡힌 직후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살한다. 후에 벤야민의 연구는 아도르노에게 전해져 빛을 보지만, 그의 생애는 독일 철학자들의 그것과는 다르게 처절했다. 아렌트 역시 결국 수용소로 붙잡혀 가지만, 극적으로 탈출하고 남편과 미국으로 망명한다. 아도르노는 영국 런던으로 피신했다가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호르크하이머 등 여러 학자들과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결성, 비판철학의 흐름을 주름잡는다. 하지만 유럽에서의 파시즘 광풍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죄책감과 향수병을 항상 가진 채 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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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인류사적으로 완전한 악을 행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 한마디 사과나 한 번의 사죄의 입장을 내비치지 않은 철학자 하이데거를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과연 이런 사람의 철학을 배워야하는지를 질문한다. 인간은 따로국밥이 아니다. 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은 그의 사상뿐만 아니라 태도, 업적, 기호 등을 종합한 것이다. 하이데거라는 사람도 학문적 업적만을 따로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그의 나치에 부역한 행동과 철학 사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거부하기란 어렵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그의 과오만 쏙 빠져 평가 절상돼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비슷하게 우리나라 몇몇 근대 문학가들도 과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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