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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봄날 사라진 소년

  • 기사입력 : 2018-03-15 09: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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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도 오늘처럼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봄처럼 푸르렀던 17세 소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날입니다.
     
    그날은 소년이 용마고(당시 마산상고) 합격자 발표 때문에

    남원에서 마산을 찾았던 길이었습니다.
     
    그날 마산은 전쟁통과 같았습니다.
    분노한 시민 수 천명이 거리를 채웠고
    경찰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습니다.
     
    그날은 제4대 대통령 선거 및 제5대 부통령 선거날이었습니다.
    이승만 자유당 정부가 장기집권을 위해
    유권자 조작, 정치 깡패 동원, 단체 투표 등 최악의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참지 못한 마산 시민들이 시위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소년도 시위대에 섰습니다.
    마산시청 앞에서 또래 소년들과 함께 외쳤습니다.
    "협잡선거 물리치고 공명선거 다시 하자"
     
    "빨갱이다 진압하라."
    정부는 잔혹하게 시위대를 진압했고
    거리는 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청년 1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시민 250명이 다쳤습니다.
    강력한 무력진압에 시위대는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엄마는 남원에서 마산으로 달려왔습니다.
    온 거리를 찾아 헤매도 소년은 없었습니다.
    시청 연못에 빠졌다는 소문에 물을 빼봤지만 그 곳에도 없었습니다.
     
    소년을 찾은 것은 27일 후였습니다.
    4월 11일,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에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올랐습니다.
    소년, 김주열이었습니다.
    돌멩이 철사줄에 묶여 바다에 버려져
    긴 시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죽어서 흙밥이나 될 바에는 무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살아생전 사람 노릇을 해서 이름을 남겨놔야죠."
    엄마는 평소 아들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아들의 죽음을 갸륵하다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소년의 참혹한 시신은
    많은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습니다.
    흩어졌던 시위대는 다시 뭉쳤습니다.
     
    그날 밤 마산에서는 2차 의거가 벌어졌고,
    시위의 불씨는 4.19 혁명으로 이어져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사임,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게 됐습니다.
     
    오늘은 소년이 실종된 지
    58년이 지난 날입니다.
     
    제58회 3.15의거 기념일,
    오늘 우리는 소년과 이름 모를 많은 열사들의 죽음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숨 쉬고 있을 테니깐요.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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