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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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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결혼이주여성 국내 1호 간호조무사 로첼 A 마나다 씨

낯선 땅에서 이룬 꿈… ‘천사 손길’로 환자 돌보는 ‘미소 천사’
필리핀 백화점에서 일하던 스물두 살 때
고객 주선으로 남편 만나 결혼했어요

  • 기사입력 : 2018-03-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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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몸이 힘들고 걱정되는 일이 있어도 항상 웃어요. 집안일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환자 앞에서는 환하게 웃어줘야죠. 저는 아픈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간호조무사잖아요.”

    사천시 동금동 삼천포서울병원의 중증·치매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32병동에는 ‘미소천사’가 있다. 결혼이주여성으로선 국내 첫 간호조무사인 로첼 A 마나다(40)씨. 그녀는 “내게 환자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요, 할머니다. 가족인데 어떻게 나쁜 표정으로 대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하면서 “체구가 큰 욕창환자를 치료할 때는 많이 힘들어요. 또 간병사로 아르바이트할 때 환자들의 물리치료실 이동을 도왔는데, 그때는 어깨가 너무 아팠어요. 그렇지만 환자를 돌보는 일이 재미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면서 살면 행복해지잖아요”라고 말했다.

    로첼씨는 필리핀에서 두 번째 큰 섬인 남부의 민다나오(Mindanao) 출신이다. 13살 때 아버지를 여읜 탓에 어머니 혼자 오빠와 남동생 넷, 로첼씨 등 6남매를 키우기에 힘이 부쳤다.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그녀는 가정경제를 도왔고, 몸이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도 해야 했다. 그러다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던 1999년 22살 때 고객으로 알고 지낸 통일교 관계자 주선으로 남편을 만나 그해 11월 필리핀서 결혼했다. 2개월 정도 한국문화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고, 2000년 1월 고성으로 시집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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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결혼이주여성 간호조무사인 로첼 A 마나다씨가 삼천포서울병원에서 중증·치매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어머니가 강경하게 반대했지만,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코리아(Korea)가 ‘북한’으로 오인돼 위험하고 나쁜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내 선택은 옳았어요. 한국에 안 왔으면 지금의 로첼은 없잖아요. 다만 한국에 온 지 불과 7개월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아파요”라고 회상한다. 어머니와 이별은 너무 빨리 했지만 그녀의 뱃속엔 이미 첫딸이 찾아왔고, 둘째 딸을 낳은 뒤 2003년 11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로첼씨가 제2 인생을 사는 데는 두 명의 은인이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이정기 센터장과 삼천포서울병원 이승연 이사장이다. 로첼씨가 2008년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에서 6개월간 컴퓨터를 배울 때였다. 그녀를 눈여겨봤던 이 센터장이 “결혼이주여성도 전문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간호조무사에 도전하기를 권유했다. 학창시절 간호학과 학생들의 하얀 교복을 보며 동경심을 가졌던 그녀이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15년이나 지난 데다 한국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센터장의 집요한 설득이 통했다.

    그런데 한 간호학원에 문의해 본 결과, 국내와 다른 필리핀 학제 때문에 학원등록을 거부당했다. 이때 “방법을 찾아보자”며 이승연 이사장이 손을 내밀었고, 병원 부설 간호학원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주간에는 쥐치포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학원을 다녔다. 밤 10시 수업을 마치고 귀가해서는 새벽 2~3시까지 복습해야 했다. “한글교재를 영어로 번역해 공부했는데, 그마저도 의학용어이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를 돌이켜 보면 어떻게 공부를 해냈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라며 대견해했다.

    1년 뒤인 2010년 10월 합격통보를 받았지만, 결국 학제가 문제됐다. 한국은 고교까지 12학년인데 비해 필리핀은 10년이었기 때문에 고졸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해석이었다. 이 센터장이 언론에 호소하면서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됐고, 5개월간 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외교통상부·경남도 등을 거치며 우여곡절 끝에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함께 공부한 다른 합격생들은 자격증을 받았지만, 몇 개월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사실상 포기했어요. 그러던 2011년 3월 어느 날 이사장님이 강당에서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올라갔는데, 서프라이즈로 자격증 수여식을 준비해 주신 거예요. 정말 눈물 많이 흘렸어요”라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이후 로첼씨의 영향으로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의 간호조무사 합격 소식이 잇따랐다.

    로첼씨는 삼천포서울병원 일원으로 2016년 필리핀 의료봉사를 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환자들에게 놀라면서도, 이틀 만에 다 진료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까워했어요. 특히 출산한 지 3일 됐다는 10대 엄마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찾아왔는데, 3일치 약만 챙겨줄 수밖에 없을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라며 오는 4월 두 번째 의료봉사를 앞두고 벌써부터 먹먹해지는 기분이란다.

    로첼씨 역시 다문화가정 엄마로서 고민이 많았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울며 집에 오는 초등학생 딸에게 “울 필요 없어. 내일 친구에게 가서 ‘너는 비행기 몇 번 타봤니, 너희 엄마는 영어 잘하니’라고 물어보라고 말해 줬죠. 그러자 다음 날 엄마가 말한 대로 물으니 친구가 아무런 대답을 못하더라며 기분이 풀어지기도 했어요.” 그랬던 두 딸은 이제 엄마의 고향인 민다나오로 유학을 갔다.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 열흘 정도 해외연수를 다녀온 큰딸이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고민이 됐지만, 우리 아이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에 오케이 했어요.” 이제 12학년제로 바뀐 필리핀의 고3, 고1이 된 두 딸은 엄마의 희망으로 성장하고 있다. 특히 큰딸은 엄마의 영향을 받아 간호대에 진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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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웃는다는 ‘미소천사’ 로첼 A 마나다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제는 우리 가정 얘기도 할 수 있어요. 너무 담아두기만 하지 않으려고요”라며 3년째 별거 중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남편의 폭행이 심했고, 아이들의 상처가 깊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두 딸을 위해서 결심을 미룰 수 없었다고 한다. “큰딸은 남자들 큰소리만 들어도 놀라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못 받다 보니 저보다는 아이들이 더 원했어요. 그렇지만 딸들을 위해 아직 이혼은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유학 간 지 1년 정도 지나고 나니 이제는 아빠와 전화통화를 하나 봐요.” 두 딸의 미래에 대해 묻자 “좋은 직업, 직장에 취업했으면 좋겠고, 돈은 없어도 좋은 남자 만나 행복하게 살면 좋겠어요. 한국에 돌아와 살았으면 좋겠지만, 유럽이든 미국이든 아이들 미래를 위해선 어디든 괜찮아요”라며 지극히 한국적인 엄마의 바람을 얘기한다.

    “예전엔 ‘너는 모른다. 네가 뭘 알겠니?’라고 무시당했어요. 사실 한글을 몰랐었지, 분별력이 없었던 게 아니잖아요. 특히 ‘니(너) 얼마짜린데?’라는 말을 들을 땐 너무 슬펐어요. 우리가 물건도 아니고, 노예로 팔려온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나 이제는 한국사회도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특히 다문화가정 자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크게 늘어 감사해요.”

    “‘간호사 공부를 해보지’라는 분들이 있는데요, 간호조무사 공부와는 비교 안 될 정도로 어렵고,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데도 힘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현재의 일에 집중하고 있어요. 또 나의 미래보다 아이들의 미래가 더 중요해요. 그렇지만 ‘로첼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다’라는 당당한 생각을 갖고, 스스로 어깨를 톡톡 치며 응원하며 살 거예요.”

    글·사진= 정오복 기자 obok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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