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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어방동의 호구

  • 기사입력 : 2018-03-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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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을 앞둔 우리 반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난 주로 6학년을 맡기 때문에 거의 해마다 듣는다.

    “선생님, 내년에도 학교에 계실 거죠? 중학교 가서도 잊지 않고 꼭 찾아올게요.”

    그러면 나도 늘 하는 대답이 있다. “우리 성공해서 만나자.”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하여튼 한참 뒤에나 보자는 뜻이다. 지난 1년 동안 누구보다 반 아이들과 정들었지만 나에게도 사연이 있다. 김해 어방동에 있는 한 초등학교로 신규 발령을 받은 뒤 3년 연속으로 6학년을 맡은 적이 있다. 그다음 해에 나는 옆에 있던 중학교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모두 내가 졸업시킨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고, 애들이 부모님께 잘만 말해주면 여기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5월 스승의 날 즈음에는 졸업생들의 연락이 많이 왔다.

    “화요일은 올해 졸업한 애들 오고, 수요일은 중2 애들이 찾아온다니까 중3은 목요일에 와라.”

    온다는 아이들이 하도 많아서 학년별로 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올 때쯤 매일 피자 5판씩 배달시켰다. 동네 피자집이었지만 테두리에 치즈랑 고구마도 추가로 넣고 이것저것 해서 3일 동안 30만원 가까이 썼다. 살던 원룸의 월세가 30만원이었고, 신규 교사 월급에 적지 않은 돈이었다.

    마지막 날, 반갑기도 하지만 훌쩍 크고 변해 버린 중3 아이들이 왔다. 안부 인사를 하고,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 진로에 관한 이야기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도 내가 어색한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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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생이 된 듯 밝은 표정으로 손님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 애가 말했다.

    “피자랑 치킨 둘 다 있을 줄 알았는데 피자밖에 없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먹먹했던 나의 마음과 그 아이의 입술에 잔뜩 묻어 있던 피자 기름이.

    아이들이 가고 난 뒤에 먹다 남긴 피자 테두리를 치우는데 씁쓸했다. 같은 학교 친한 형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이렇게 말했다.

    “임마 이거 완전 ‘어방동의 호구’네.”

    웃겼다. 스스로 국회의원감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호구였던 것이다.

    졸업생들아. 한참 뒤에도 선생님이 정말 보고 싶고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찾아와 줄래? 피자랑 치킨 둘 다 보고 싶을 때 말고. 이상녕 (김해삼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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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녕 (김해삼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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