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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빌딩- 김달님(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 기사입력 : 2018-05-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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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잠 잔 날을 빼면 주로 걸어서 출근을 하는 편이다. 얼마 전,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 주변 상가를 두리번거리는 한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칠십 정도의 나이, 마른 체구에 빛바랜 베이지 점퍼를 입은 할아버지는 길을 잃은 것 같았다. 한산한 아침, 마침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은 나 하나였고 할아버지는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쪽지 한 장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로 가려면 어떻게 갑니까?”

    손바닥만 한 쪽지에 검정 볼펜으로 눌러쓴 글씨는 D로 시작하는 빌딩 이름과 주소였다. 처음 보는 빌딩이었고, 휴대전화로 검색해도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었다.

    “할아버지. 이 빌딩 이름이 맞나요”



    “여기로 가라고 하던데….”

    할아버지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이번엔 지도 앱을 켜 주소 전체를 검색해봤다. 도착지를 나타내는 빨간 화살표 인근에 익숙한 빌딩 이름이 보였다. 출근길에 꼭 지나치는 L빌딩이었다. “할아버지. 저와 함께 가세요.”

    L빌딩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익숙한 동네였지만 자타공인 길치인 나는 방향을 잘못 찾을까봐 휴대전화 화면과 거리를 번갈아보며 걸었다. 출근 시간에 늦을까 발걸음도 빨라졌다. 근처에 다다랐을쯤, 조금 떨어져 걸어 오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누가 소개를 해줬어요. 거기 가면 일자리가 있다고.”

    나는 멈칫한 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면접을 보러 가시는구나. 회사 동료에게 조금 늦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근처 빌딩의 경비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쪽지를 보여드리니 바로 D빌딩의 위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 건물 뒤로 빙 둘러가세요.”

    경비 아저씨가 가리킨 쪽은 최근 재건축을 마친 주상복합 건물의 뒤편이었다. 1층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있어 몇 번 들렀던 곳인데, 그 뒤에 D빌딩이 있을 줄 몰랐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인사하곤 건물 뒤로 사라졌다. 할아버지가 걸어간 쪽을 보니, 오래된 외벽의 건물 2층에 D빌딩의 이름을 딴 모텔 간판이 보였다. 그날, 할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했을까. 며칠 뒤 출근길에 힐끔 D빌딩 쪽을 바라봤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빌딩 외곽이 눈에 띄었다. 나는 이제 D 빌딩이 어딘지 안다.

    김달님 (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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