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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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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26년째 침술봉사 김명철 한의사

침놓는 ‘한센인 주치의’… 아픈 몸에 ‘콕’ 시린 맘에도 ‘콕’

  • 기사입력 : 2018-08-0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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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가 돈을 받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일인지 아십니까.”

    부산에서 산청으로 이사온 다음 달부터 18년간 매주 목요일이면 지역의 요양시설을 찾아 의료 진료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가 매주 목요일 9시에 도착하는 곳은 한센 병력을 가진 분들의 쉼터인 산청군 산청읍 성심원.

    오래전 한센인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사용했다는 나룻배가 전시된 입구를 지나 한센 병력의 어르신들이 주거하는 건물에 도인 같은 풍모를 지닌 중년인이 소탈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방진료를 하고 있다. 바로 주인공인 김명철(60) 한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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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째 침술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산청 김명철 한의사가 봉사활동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부산이 고향인데 어찌 이 산골까지 왔나 물으니 ‘지리산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김 한의사가 지리산을 지붕 삼아 공동체 마을을 꾸려 살고파 산청으로 온 지 벌써 18년째다.

    그 긴 세월을 한결같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되돌아오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는 그들의 얼굴이 보기 좋아서”, “의사가 돈을 받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것인지 아느냐”고 대답했다.

    김 한의사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먼저 봉사활동을 하던 친구를 따라서였다.

    대학생 시절 부산의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봉사활동을 따라가 노래도 부르고 여러 잡일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도 침 치료를 할 수 있어 하게 됐다. 그렇게 의료봉사에 재미를 붙여 8년여를 다녔다.

    그러던 중에 사회의 오해와 편견으로 소외를 겪고 있는 한센 병력 어르신들이 소록도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소록도 이사를 마음먹었을 때쯤 우연히 산청에도 한센인 시설인 성심원이 있음을 알고 산청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성격 탓일까. 2001년 7월 산청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다음 달인 8월부터 성심원을 찾아 매주 목요일마다 평균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침 치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의료 봉사활동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텐데 특별히 한센 병력 어르신들에게 한의진료를 펼치게 된 이유에 대해 “일반적인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계신 분들은 상대적으로 운신이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가 많다.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창구도 그나마 더 있다. 그러나 한센인 분들은 밖에 나올 일이 거의 없어 한방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2주에 한 번 하려고 하다가 1주일에 한 번씩 봉사를 하고 있다”며 의료봉사라면 이런 분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그저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니 내가 행복해서 해 온 일이니 그리 거창한 이유도 없다. 앞으로도 그저 어르신들의 말벗이나 해드리며 불편한 곳 치료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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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원을 찾아 한방진료를 하고 있는 김명철 한의사.


    한센 병력 어르신들에 대한 편견도 버려달라 주문했다.

    “한센 병력이 있다고 해서 특별한 증상은 없다. 비슷한 나이대의 다른 분들과 대동소이하다. 움직이기가 힘든 분들이다 보니 대부분 소화불량이나 요통, 중풍 등을 겪으신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침을 놓아 드리는 등 치료를 했다.”

    남을 위해 움직이는 그의 마음은 의료봉사로는 모자랐나 보다. 그는 단순히 한의원을 운영하며 의료봉사를 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자신이 자리 잡은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직접 기획하고 발전시킨 프리마켓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다.

    산청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시장이자 벼룩시장인 ‘목화장터’는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과 직접 만든 수공예품, 수제 빵이나 쿠키, 잼 등의 음식, 사용하지 않는 헌옷 등의 물건은 물론 재능도 기부할 수 있다. 판매도, 물물교환도 가능하다. 지난 2015년 신안면에서 첫 목화장터가 열린 이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에 장이 선다. 벌써 3년째다.

    목화장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청년들이 시골에 쉬이 정착하고 살 수 있는, 청년을 위한 마을을 만들어 보고 싶어 이번에는 단성면에 공동체 마을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단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청년이 설 자리가 없다. 대학을 다니는 것도 고민, 졸업을 해도 고민이다. 취업도 쉽지 않다. 취업을 해도 온갖 갑질과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창업이 쉬운 것도 아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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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원을 찾아 한방진료를 하고 있는 김명철 한의사.


    “이런 때일수록 시골이 어머니의 품처럼 지친 청년들을 끌어안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장의 시골도 청년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그 준비를 해주고 싶다.”

    “시골로, 지리산 자락으로, 산청으로 오고 싶은 청년들이 미리 이 지역을 경험해 보고 배워 쉬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동체가 있었으면 한다. 원한다면 몇 달 살아보며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다.”

    과연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내가 즐겁다’고 말하는 인물답다. 이토록 ‘남 좋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니 새삼 새롭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김 한의사의 모습을 보니 그가 꿈꾸는 살기 좋은 세상에 나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내가 봉사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를 종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뜻을 같이하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과 봉사하는 삶의 재미와 의미를 나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윤식 기자 kim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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