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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극채색 볏 - 송재학

  • 기사입력 : 2018-08-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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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


    계관이란 떨림에 매달은 錘이다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다

    극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낙타의 혹처럼, 숨표처럼

    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 한 발짝 운신조차 허락되지 않은 닭장에 갇힌 채 산고의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수많은 닭들을 보면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아무런 보람도 없이 날마다 알을 낳는 고통에 시달리다 자궁이 삭은 고무패킹처럼 헐거워지면 곧바로 목에 칼이 들어오는, 천연의 야생에서 유일한 보호색인 ‘극채색 볏’이 박혀 있는 머리통은 한갓 쓰레기가 돼버린다. 이처럼 현실(양계장)에선 이미 무용지물이 돼버린 ‘닭의 볏’을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으로 상상해 ‘볏’을 몸 밖으로 넘치는 정신을 감당하는 공간으로 격상시켜 놓고 있다.‘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이미지는 ‘볏’과 ‘가뭄’을 한통속으로 묶음으로써 닭을 우주와 교통하는 존재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이 작자는 관념으로 흐릿해진 ‘닭의 볏’ 같은 세계를 도도한 상상력으로 탐미하는 데 집중한다. 탐미 그 너머에는, 우리에 갇힌 닭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 제시돼 있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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