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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시민들이 이룬 부마민주항쟁

  • 기사입력 : 2018-10-18 21: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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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민주항쟁, 들어는 봤는데 잘은 몰라요.”

    “민주성지 마산이라고 하는데 사실 왜 그렇게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의 뒤틀린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해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시민항쟁입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에 반발해 10월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교내 시위를 시작했고 그 소식이 마산 경남대까지 전해졌습니다.

    교내가 술렁이는 가운데 10월 18일 오후 2시 15분, 학교 측이 무기한 휴교를 발표하자 학생들이 반발하며 도서관 주위로 1000명이 모여들었지요.

    “지금 부산에서는 학우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피를 흘리고 있다. 3.15영령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자. 나가자!” - 당시 국제개발학과 2년 정인권
    학생들은 “민주회복, 독재타도”를 외치며 교문 밖을 나서습니다.

    사복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분산시키는 가운데 마산시 중심가인 창동과 부림시장, 오동동, 불종거리 일대 번화가에는 1만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시위는 계속됐고, 다급해진 정부는 20일 마산에 위수령을 선포해 공수부대와 39사단 병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강경진압하며 무차별 구타하고 폭행했습니다. 최근에는 부마항쟁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군인들을 투입할 수 있는 위수령 발령 전에도 200명이 넘는 공수부대를 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마항쟁이 있어, 유신체제의 종결을 앞당길 수 있었는데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심, 민주주의를 지켜냈던 이 정신을 여태까지 온전히 기리고 있지 못했습니다. 국가기념일도 없었기 때문이죠.

    항쟁이 촉발된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이 모두 항쟁했던 10월 18일 두 날짜 가운데 10월 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추진하는 데 부산과 마산이 합의하면서 기념일 지정에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 부마민주항쟁, 그땐 국가기념일로 기념식이 열릴 수 있을까요.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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