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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1)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몸 돌보던 보건소, 마음 보듬는 미술관 되다

  • 기사입력 : 2019-0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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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가는 길이 참 아름답다.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 겨울바다의 은빛 물결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웅장한 위용의 남해대교와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은 정겨움을 더한다. 소박한 마을 풍경과 이어진 돌담길은 아련한 추억을 더듬게 하고 푸르름을 더하는 남해 별미 시금치와 마늘은 한 겨울의 맹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초록을 내뿜는다.

    ‘이런 멋진 풍경이라면 나도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혼잣말을 되뇌며 찾은 남해군 남면 평산리 ‘바래길 작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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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내부 모습. 현재 ‘텍스트에서 그리움’전이 열리고 있다.

    남해의 나지막한 고동산(359.6m)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평산리는 아랫마을 ‘평산 1리’와 윗마을 ‘평산 2리’로 나눠져 있고 훈훈한 마을 주민들의 인심에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는 남해의 명소 중 하나다.

    조용하고 아담한 평산마을은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하지만 빼어난 풍광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언덕에서 바라본 마을과 관선도(섬), 평산항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더욱이 평산리는 남해 ‘바래길 작은미술관’과 함께 문화관광체육부가 2010년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로 선정한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 출발점이 자리 잡고 있어 연간 2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탐방객들이 찾는 어촌마을이다.

    ‘바래’는 남해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물때에 맞춰 갯벌과 바다에서 해조류와 해산물을 캐는 것으로 남해의 토속말이라고 한다. 어찌 됐건 전국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바래길은 ‘생존을 위한 길이요, 나눔을 실천하는 삶의 길’인 것은 분명하다. 아름다운 항의 풍광에 취해 길을 걷다 보면 평산 1리 마을에 이른다. 골목길 담벼락에는 ‘남해 바래길에 어서 오시다’라는 글귀와 함께 싱싱한 횟감들이 수족관에서 춤을 추며 낯선 이들의 입맛을 돋운다.

    작은미술관은 마을의 농산물유통센터 창고와 횟집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얀 건물에 파란 글이 새겨진 이색적인 풍경의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작은미술관에는 ‘텍스트에서 그리움’전을 알리는 안내 현수막과 함께 이곳이 예전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던 진료소였음을 알리는 ‘평산보건진료소’ 현판과 청진기·병원 마크 모형이 입구 벽면에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은 지난 2015년 10월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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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내부 모습. 현재 ‘텍스트에서 그리움’전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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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 입구. 파란색 미술관 현판과 평산보건진료소 간판이 인상적이다.

    (사)대안공간 마루와 남해군이 문화체육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함께 추진한 ‘작은미술관 조성·운영’사업에 선정되면서 폐허였던 어촌마을의 작은 보건진료소는 새롭게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다시 말해 몸(身)을 치료하고 보살피던 ‘보건진료소’가 이제는 마음을 치료하는 힐링공간 ‘미술관’으로 변신한 순간이다.

    옛 ‘평산보건진료소’는 1984년 개소해 27년여 동안 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했다. 평산 1·2는 물론 인근 유구, 오리마을 등 4개 마을 주민들을 보살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다. 1998년 1차 폐원 후 주민들의 요청으로 일주일에 2회 정도의 순회진료가 이뤄졌으나 하루 3~4명에 그치는 이용객과 인근 보건진료소 개소 등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면서 결국 2011년 문을 닫고 말았다.

    평산리 주민들은 “감기, 혈압, 근육통 등 다양한 질병이 생기면 가까운 보건진료소에서 약도 타고 주사도 맞고 했는데 아쉽다. 하지만 작은미술관이 문을 열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평산보건진료소 폐원으로 허전하고 아쉬웠던 주민들의 마음을 미술관이 문화 감성으로 대신 채워주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한 ‘작은미술관 조성·운영’은 등록 미술관이 없는 지역이거나 미술문화 확산이 절실한 지역의 공공 생활문화 공간을 일상 속 미술공간으로 재조성하는 프로젝트다. 2015년 남해 ‘바래길 작은미술관’을 비롯해 경기 동두천 ‘두드림 작은미술관’, 전남 고흥 ‘소륵도병원 작은미술관’, 인천 동구 ‘우리미술관’, 충남 계룡 ‘두계 장옥미술관’, 경기도 안산 ‘작은미술관 밖 더 큰 미술관’ 등 6곳이 선정됐다. 이후 남해 바래길 작은미술관은 4년 연속 민간인 위탁운영으로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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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간 폐허로 방치됐던 평산보건진료소는 수개월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마침내 작고 아담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73.34㎡의 작은 건물에 5개의 방을 전시실로 꾸며 아기자기한 전시공간이 생겼다. 개관에 앞서 남해를 주제로 진행된 ‘보물섬’전은 경남수채화회장을 지낸 전병수·이경태·김희곤·전인숙·신종식 등 5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주민은 물론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후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바다바람전’, ‘여섯개의 신호전’, ‘소통과 치유전’ 등 4개월여 동안 1만명에 육박하는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았다. 아마도 평산항을 출발해 가천 다랭이길까지 이어지는 남해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을 걷기 위해 이곳을 찾은 많은 탐방객들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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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평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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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산1리 마을 골목길. 담벼락에 ‘남해 바래길에 어서 오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난해에는 삶의 대부분을 남해와 함께한 그림 그리는 ‘허구잽이’전과 방안이라는 폐쇄된 작업공간을 탈피해 청년작가들이 남해 곳곳을 누비며 보고 느낀 감정을 로그캠프에 담아 숙성시키고 자유로이 그려낸 ‘방구석 로그캠프’, 청년 조각가들이 남해의 작은미술관과 바래길 1코스 다랭이지겟길을 연결하는 실내·외 미술프로젝트 ‘바래길’, 남해 여행객들이 가진 추억을 편지에 담아 이를 통해 남해 체류기를 연상하는 ‘메모리 남해에서 온 편지’ 등을 진행하는 등 개관 후 4년 동안 총 18회의 기획전과 ‘나도 화가다’, ‘아이들이 읽는 남해로드’, ‘에코백 만들기’ 등 6회의 체험전을 진행했다.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은 이제 마음을 치유하는 문화예술공간을 넘어 주민들과 탐방객들을 엮어주는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다.

    평산리 주민들은 바래길 작은미술관에서 아름다운 남해의 풍경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기를 희망한다. 작품을 평가하기에 아직은 부족함이 있지만 때로는 편안한 그림, 눈에 익은 풍경들 위주의 작품들이 미술관에 자주 전시되기를 주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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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래길 1코스 ‘다랭이지겟길’ 출발 지점.

    ‘바래길 작은미술관’을 찾은 탐방객 서정오(66·서울)씨는 “30년 전 남해에 출장 왔다가 정년퇴직 후 아내와 함께 여행을 오게 됐다. 오늘 남해 바래길 1코스인 ‘다랭이지겟길’을 걸은 후 지인의 추천으로 바래길 작은미술관을 둘러보게 됐다.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도 좋았지만 작은미술관의 작품들도 정말 좋았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작은미술관 앞 한편에는 빨간 우체통이 자리 잡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엽서나 편지를 쓴 후 주소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미술관이 무료로 보내주는 추억을 제공한다.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은 이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설치·조각작품 등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남해의 조그마한 작은미술관이 지역의 문화사랑방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엿한 문화거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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