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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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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 박서영

  • 기사입력 : 2019-03-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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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창고에 매화꽃이 핀 이유가 있어요

    매일매일 온도가 높은 불을 켜놓았었는데

    불은 한 번도 꺼진 적 없고

    눈물은 달고 짠 핏물의 운명 곁으로 흘러갔으니

    오래된 꽃무늬 은장도의 날을 빛나게 하는 건

    얼어붙은 눈물이 분명하지요

    나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지를 알고 있어요

    창고 안에 소금꽃일까, 매화꽃일까

    차갑게 끓어오르는 것에는 꽃이 펴요

    봄은 칼집을 열 듯 오고 심장에 맺힌 걸 보여줘요

    당신이 날씨의 영향으로 나를 껴안고

    강렬한 슬픔을 입김으로 불어넣어준 날에

    빛나는 은장도를 갖게 되었지요

    결국 내가 나를 찌르고

    피 묻은 은장도를 숨겨야 했던 곳

    흰 시간 속에는 아무도 모르게 배달된

    휘파람새 한 마리도 파묻혀 있어요

    나는 그곳에서 매일 홀짝홀짝 울면서

    울음의 성지(聖地)를 지키고 있어요

    소금무덤 말이에요 매화꽃 말이에요 휘파람새도

    자신의 노래비를 증오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해해요, 다 옛날 일이잖아요

    ☞ 박서영 시인의 유고시집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가 지난 2월 출간됐다. 이 ‘소금창고’는 유고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매화꽃같이 차갑게 끓어오르는 그 무엇이 달고 짠 핏물의 운명 곁으로 시인을 흘러가게 했을까. 왜 계속해서 울음의 성지를 지켜야 했을까. 그 모든 슬픔의 원인에게 시인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 ‘하지만 이해해요. 다 옛날 일이잖아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살아가기가 정말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다. 정작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성이 없는데 당한 사람만 속이 다 썩어 내려앉아 그 상태 그대로 소금에 절여져 소금무덤에 갇혀 있다. 시인이 아픈 몸을 끌어안고 있던 흰 시간 속에는 아무도 모르게 배달된 휘파람새 한 마리가 파묻혀 있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던 새도 결국은 자신의 노래비를 증오하게 되는 세상. 하지만 시인은 다 용서한다. ‘다 옛날 일이잖아요, 당신을 용서해드릴게요. 그러니 편히 사세요.’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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