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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71) 제24화 마법의 돌 71

“저… 기억하세요? 나츠코인데…”

  • 기사입력 : 2019-04-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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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은 일본인들과 사업을 하는 것이 싫었다.

    단양에 간 류관영은 다음 날이 되어서 돌아왔다. 일본인 시멘트 기술자도 데리고 왔다. 이름을 히로시라고 했다. 나이는 30대 후반인데 인상이 깐깐했다.

    이재영은 그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이재영의 삼일상회 옆에 있는 낙지전골집이 유명했다. 낙지전골이 매웠지만 히로시는 잘 먹었다. 히로시는 시멘트 공장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이재영은 히로시와 두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하고 시멘트사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히로시는 공장장을 시켜달라고 말했다. 이재영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 문제는 미리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시멘트 사업을 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동업자가 결정되면 충분히 검토하겠습니다.”

    이재영은 류관영에게 히로시를 잘 대접하라고 지시했다. 히로시는 대구에서 하루를 쉬고 경성으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식당에서 나오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가을비구나.’

    이재영은 잿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가 그치고 나면 단풍이 더욱 짙어질 것이고 낙엽이 떨어질 것이다. 가게로 돌아와 천천히 커피를 마시는데 전화가 왔다.

    “저… 기억하세요? 나츠코인데….”

    전화기 속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이재영은 나츠코의 전화에 가슴속에서 현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 여자가 왜 전화를 한 것이지?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녀를 만난 지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경성역에서 재회하고 대구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었다. 그 뒤에 일본에 혼자 갔을 때도 만났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문득 그녀와 만나고 싶어졌다.

    “그럼요. 잘 지냈어요?”

    나츠코를 연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연인이라면 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그렇다면 무슨 관계인가. 어쩌면 부정한 관계다. 부정하기 때문에 더욱 야릇한 기분이 느껴졌다.

    “네. 아직 대구에 사시나요?”

    “예. 대구에 살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데… 경성에 올라오실 생각은 없으세요?”

    “경성에는 나츠코상 남편이 있지 않나요?”

    여자의 남편이 있는 곳에 가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다.

    “저도 그런 줄 알고 왔어요. 그런데 중국으로 출정했다네요.”

    “중국에요?”

    “남경으로 진격하고 있대요. 경성에 올 수 있어요?”

    나츠코의 남편은 중일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이 소좌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쯤은 진급을 했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없다면 만나고 싶다.

    “갈게요.”

    이재영은 나츠코와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츠코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거리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빗줄기가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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