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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섬회생 전문가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

관광객 나르며 희망도 나른다… 돝섬 살려낸 ‘경영 선장’

  • 기사입력 : 2019-06-13 20: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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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앞바다에 떠 있는 돝섬. 섬은 이름 그대로 누워 있는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돝은 돼지의 옛말이다. 돝섬은 올해 ‘황금돼지의 해’인 기해년을 맞아 찾아오는 이들로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중심에 10년이 넘도록 뱃길을 이어온 선장 오용환(60)씨가 있다. 그는 돝섬을 오가는 도선 등을 운항하는 민간사업자이지만 경남지역 곳곳의 섬을 되살리는 ‘섬 회생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가 돝섬의 상징인 황금돼지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가 돝섬의 상징인 황금돼지를 안고 활짝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잘나가던 ‘기업회생가’ 돝섬을 만나다= 오용환씨는 경남지역도 섬과도 인연이 없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경영학을 전공하며 스무 살 무렵부터 삼성SDI에 입사해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했고, 회사를 나와선 제조업 공장을 차려 30대 초반 나이에 경영주도 됐다. 오씨는 “회사를 나와 욕조나 세면대를 만드는 공장을 차려 3년 정도 운영했는데 어느 날 공장장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때 재료물질이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경영을 못 할 만큼 두려움이 커서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접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벤트회사를 차려 1인 창무극의 대가로 알려진 고 공옥진 여사의 전국해외 순회공연을 기획하는 등 행사를 주최하는 일도 했다.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행사가 늘 잘되는 것이 아니어서 2년 만에 사업을 또 접게 됐다”며 “대신 인생을 살아가는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오씨는 이후 한 중소 건설회사에 관리부장으로 입사하게 된다. IMF에 앞서 많은 중소기업이 줄도산하던 시기였다. 이 회사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회사가 부도 직전으로 30개 건설현장의 임금체불만 20억 정도였는데 사장은 교도소만 안 가게 해달라며 수습을 부탁해왔다”며 “원청인 대기업들에 추석 기성금을 앞당겨 공사대금으로 미리 지급해달라고 호소해 이틀 만에 15억을 확보하고 급한 임금체불부터 해결해 부도를 막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주들 다 도망갔는데 기적 같은 일이었다. 사연이 각종 라디오나 신문방송에 알려지게 됐고 관련 협회에서도 기업 위기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리스크 닥터’ 등 이름으로 기업회생전문가 활동을 하게 됐다”고 했다.

    오씨는 1995년 건설부도연구소를 차려 건설업체의 경영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1997년 한국산업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2002년 기업회생전문가 그룹 R&I연구소를 차려 약 2000곳에 이르는 크고 작은 기업의 위탁경영이나 경영지원에 참여했다. 그중 하나가 돝섬의 위탁운영업체였다. 그의 활약이 알려지면서 2007년 당시 돝섬을 운영하던 가고파랜드에서 도산 위기에 처해 그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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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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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

    ◆돝섬 살리기 10년= 오씨는 많은 기업을 회생시킨 경험으로 섬을 살려보기로 한다. 그가 돝섬을 찾은 것은 2007년 가고파국화축제 때였다. 오씨는 “섬이 너무 아름다웠다. 도시와 가깝고 국화축제도 놀라웠다. 낭만의 도시, 화려한 도시로 여겨졌다”면서 “처음 가고파랜드에서 도와달라고 나를 찾아와 선박 대여료를 투자한 것이 섬을 찾은 계기가 됐다. 가고파랜드는 1982년 국내 최초 해상유원지로 돝섬을 개장한 이후 2003년 70억을 투자했다가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보고 당시 도선 한 척 구할 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고파랜드의 파산을 막기 위해 10억을 투자해 위탁경영에 참여했지만 회사가 살아날 방도가 없었다. 뱃길이 끊기면 돝섬도 미래가 없다는 생각에 이 업체를 내가 인수해 한번 살려보기로 결심했다. 이때 업체명도 돝섬해피랜드로 바꿨다”며 “섬 관리는 섬 소유자인 시에서 맡기로 하고 노선만 갖는 것으로 협의해서 언젠가 운항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기다림은 결실을 봤다. 창원시는 돝섬을 정비해 2011년 본격 재개장했고 그는 운항을 곧바로 재개해 관광객 발길이 조금씩 늘었다. 2011년 6만3000명가량 찾은 것을 시작으로 2012년 7만, 2013년 9만, 2015년 11만명대를 넘겼다. 올해는 벌써 9만명을 넘어 20만명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오씨는 지난 10년간 단 1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관광객을 수송하면서도 연중 각종 행사를 준비하고 돝섬 활성화 토론회를 주최하는 등 돝섬을 전국적 명소로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오씨는 “창원시는 돝섬을 정비하는데 주력했지만 돝섬을 찾는 관광객들 눈높이에는 안 맞았다. 많은 이들이 옛 돝섬의 아름다운 추억과 볼거리를 생각했는데 막상 볼거리가 없으니 괴리감이 발생했다. 시와 문제를 논의하고 방문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스스로 다양한 행사를 유치하며 나서게 된 것이다”며 “자기 배 불리려 하는 장사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니라 돝섬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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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용환 돝섬해피랜드 대표.

    ◆섬 회생 전문가= 오씨에게 지난 2017년 6월 통영 연명항과 만지도를 다니던 만지도선 운항 업체에서도 경영상 어려움으로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그는 그해 12월 위탁경영에 참여해 경영 정상화를 꾀하며 이듬해 5월 만지도선을 인수하게 됐다. 역시 만지도를 살려보자는 마음이었다. 하루 5회 선박을 운항하던 것을 30회로 증편 운항해 방문객들이 시간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섬을 오갈 수 있도록 했고, 섬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내세웠다.

    이에 만지도는 관광객 수가 2017년 7만여명에서 2018년 8만여명으로, 올해 12만명가량 방문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관광객이 몰려 만지도 먹거리 특화상품도 호황을 누리게 됐고 일거리를 찾아 섬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섬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그는 어촌마을 지역 어르신들이 수산물을 관광객들에 직접 팔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했고, 만지도와 연명마을 발전을 위해 매년 상생기금도 전달한다.

    오씨는 올해 3월 한려해상생태탐방원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최근 ‘돝섬지킴이’이자 ‘만지도섬장’ 등 섬 회생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는 “경남에 널린 보석같은 섬들에 관광객이 더 많이 찾을 수 있도록 만드는 섬 회생 전문가로 사람들에 다가가고 싶다”며 “경남은 특히 섬의 가치를 키워 관광상품으로 잘 개발하는 것이 섬 마을 주민들과 지역 발전을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회생가의 이야기로 ‘위기 뒤에 숨어 있는 성공 기회를 잡아라’ 등 3권의 책을 써냈다. 그는 이 책들에서 체험담을 소개하며 공통적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경남지역 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만한 이야기다. 그는 조만간 각별한 섬사랑 이야기를 담은 ‘섬은 내 운명’이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오씨는 “돝섬을 살리는 데만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옆에서 응원해주고 가정을 지켜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섬 가꾸기에 동반자가 되어주는 모두에게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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