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3일 (수)
전체메뉴

아쿠아리움 - 김이듬

  • 기사입력 : 2019-06-20 08:15:32
  •   

  •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

    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형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하다

    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가 헤엄치는 것을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한다

    해저터널로 들어온 아이들도 죽음을 앞둔 어른처럼 돈을 안다

    유리벽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나는 산호 사이를 헤엄쳐 주다가 모래 비탈면에 누워 사색한다

    나는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

    사라진 지느러미가 기억하는 움직임에 따라 쉬기도 한다

    누가 가까이 와도 헤엄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범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어느 날 내가 투명 유리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걸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유리를 툭툭 치며 죽었는지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려는 몸짓을 게으르다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돈이 필요한 날에도 참고 또 참아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대범하게 대형 수족관 안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무엇을 견뎌야 하는 나날들일까.

    나는 다 발가벗겨진 채 숨을 곳을 찾아 모든 감정을 소모해버리고 끝내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날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철저하게 유리벽 밖에서 구경꾼으로만 남아 있다. 돌아서면 그만인 사람들이 재미삼아 둘러보는 아쿠아리움의 투명한 폭력이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 궁핍한 생활을 원망하지 않는데 대범하게 아무렇지 않은 듯 돈이 필요한 날에도 참는 동물이 되어 오늘도 견디고 있는 수많은 어족들. 잠을 자는 밤에도 눈을 감을 수 없는 슬픈 어족들. 이기영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