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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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진해 군항문화 탐방

진해 하면 벚꽃?… 해군 역사·유적 탐방 왜 몰랐지?
기지·교육·군수사령부, 해군사관학교 등 위치한 ‘해군의 요람’
작년 5월부터 1일 3회 개인 차량 개별관광 허용…탐방 전일 신청

  • 기사입력 : 2019-06-20 20: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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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진해구는 군항 중심 도시였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해군 관계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해군 작전사령부가 2007년 12월 진해 해군기지에서 부산 해군기지로 이전했지만, 진해에는 기지사령부, 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 해군사관학교 등이 있는 해군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군항 내 각종 근대유적들을 보고 관련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진해군항문화탐방은 지난 2008년부터 시행됐다.

    해군이 있는 군부대는 보안 때문에 민간인들의 출입이 제한적이었지만 이를 통해 근대유적들이 원형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뭐하꼬 취재팀은 국내 유일의 영내탐방 관광인 군항 문화탐방을 신청해 지난 12일 다녀왔다.

    진해 해군사관학교 내의 거북선과 지난 1976년 해사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가 1981년 신축한 박물관(왼쪽)./성승건 기자/
    진해 해군사관학교 내의 거북선과 지난 1976년 해사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가 1981년 신축한 박물관(왼쪽)./성승건 기자/

    진해 군항문화탐방은 시행 초기만 하더라도 20인승 이상 단체 버스 차량만 가능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개인 차량 개별 관광이 가능해지고, 탐방 횟수도 1일 2회에서 3회로 늘어났다. 또한 탐방 전일 12시까지 신청할 수 있어 훨씬 더 편하게 참가할 수 있다.

    해군의 집 1층 안내소에서 탐방 교육을 받은 후 문화관광 해설 안전관이 차량에 동승한다. 해군의 집을 나서면 영화 ‘연평해전’ 촬영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에서 배우들이 항구에서 초코파이를 먹는 장면 등은 진해 군항 내에서 촬영했지만, 부대 내에 표지판을 세울 수 없어 해군의 집과 1정문 사이에 설치했다고 한다.

    1정문으로 들어서면 길 건너 왼쪽에 안중근 의사 유묵 비가 있다. 이 유묵 비에는 안 의사가 1901년 3월 26일 만주 뤼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 남겼다는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비는 1979년 9월 2일 안 의사 탄생 100주기를 맞아 제작했다.

    해군이 1961년부터 2006년까지 출퇴근 시간 이용했던 간이역인 통해역도 왼쪽 편에서 볼 수 있다. 진해선의 마지막 종착역이었지만 2006년 11월 1일 진해선의 마산~진해 간 통근 열차가 폐지되면서 운영하지 않는다. 비상시에는 활용할 수 있도록 철로는 남아 있다.

    해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손원일 제독 동상도 지나간다. 손 제독은 한국 해군을 창설하고 현재 세계 10위권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초를 다진 주역이다.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 제독 동상.
    해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원일 제독 동상.

    현재 진해기지사령부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옛 일본해군 진해요항부 청사이다. 러시아풍 건물로 1914년 3월 준공됐으며, 일본 해군 임시 건축지부가 이전해 사용했다. 1916년 4월에 진해요항부 청사로 개청했다. 해방 후 통제부사령부를 거쳐 진해기지사령부가 사용 중이며 일제 침략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194호다.

    옛 일본해군 진해요항부 청사.
    옛 일본해군 진해요항부 청사.

    인근에는 등록문화재 제197호인 옛 일본요항부 병원 청사가 있다. 이 청사 역시 러시아풍 건물이며 해방 후에는 국군진해병원과 해군 해양의료원으로 사용됐다.

    옛 일본해군 진해요항부 병원 청사.
    옛 일본해군 진해요항부 병원 청사.

    월남전 청룡부대 의무부사관으로 참전했으며, 1967년 2월 1일 베트남 추라이 지역에서 수로측량 작업을 하는 미국 UDT 요원들을 엄호하는 경계작전에서 적에 포위된 소대원을 탈출시킨 뒤 자신은 장렬히 산화한 지덕칠 중사 동상을 지나면 해군 군수사령부 건물이 나타난다.

    월남전 당시 포위된 소대원을 탈출시킨 뒤 산화한 지덕칠 중사 동상./진해구청/
    월남전 당시 포위된 소대원을 탈출시킨 뒤 산화한 지덕칠 중사 동상./진해구청/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195호와 제196호인 옛 일본해군 진해방비대 본관·별관 청사이다. 1912년 4월 거제 송진포에 있던 일본방비대가 진해로 이전해 청사로 사용한 곳이다. 러시아풍의 건물로 1912년 건축했다. 해방 후 한국함대사령부와 해군작전사령부가 사용했다.

    고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지방 유형문화재 제265호로 관람객들은 차에서 내려서 관람할 수 있으며,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통신대가 사용했던 곳으로 해방 후 해군이 인수·개조해 1949년부터 약 10년간 이 전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했다.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건물로 현관에는 봉황과 무궁화가 새겨져 있어 대통령이 출입했던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진해기지사령부 내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진해기지사령부 내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대지는 998㎡(302평), 건평 218㎡(66평)이며 집무실 겸 응접실, 침실, 경호실, 식당 겸 회의실, 주방 등이 있다. 응접실 의자의 사자머리와 발톱은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한다. 별장 안에는 일본 통신대 시절 뚫었다는 비상 탈출구도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별장 입구에는 한반도 모양의 연못도 있다. 이 연못의 가운데는 휴전선을 상징하는 돌다리가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통일이 되면 가운데 다리를 없애라고 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식당 겸 회의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식당 겸 회의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침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침실.

    별장 서쪽 해안 절벽에는 10㎡ 규모의 육각정이 있다. 이 정자는 1948년 8월 8일 이 전 대통령과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 미군정 장관 하지 중장, 우리나라 초대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이 참석해 태평양 동맹 결성을 위해 예비회담을 개최하자고 필리핀 퀴리노 대통령에게 제의한 곳으로 의자마다 앉았던 분들의 이름이 표시돼 있다. 한국 현대사뿐만 아니라 태평양 주변 지역의 정치 형세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옆 육각정.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 옆 육각정.

    군항을 따라 해군사관학교에 이르면 이인호 소령 동상을 지나친다. 고 이 소령은 1966년 대위로 월남전에 참전해 투이호아 지역에서 동굴수색 중 적의 수류탄 공격을 몸으로 막아 부하를 구하고 산화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이 소령의 희생정신을 귀감으로 삼고자 동상을 건립했으며, 군인으로서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추서받았다. 매년 8월 11일 추모제인 인호제가 거행된다.

    해군사관학교 내에는 거북선이 있다. 이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얼을 되살려 길이 계승하고자 복원했다. 노산 이은상 등 학계전문가 16명의 고증을 받아 1980년 1월 건조했으며, 지금 있는 거북선은 1차선이 노후화돼 1999년 재건조한 2차선이다.

    전체 길이는 34.2m, 폭 10.3m, 높이 6.4m이며, 16개의 노와 2개의 돛, 14개의 함포를 보유하고 있다. 승조원은 130명, 속력은 6노트(시속 11.112㎞)이다. 거북선은 설계도가 없다. 따라서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거북선은 2층으로 함포를 쏘기 위해서는 노를 빼야 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임진왜란 당시 돌격형 전선임을 감안한다면 3층 구조였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해군사관학교 내 거북선 내부.
    해군사관학교 내 거북선 내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지난 1976년 해사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당시 도서관의 부속기구였던 이충무공 문헌 전시실을 확장해 만들어졌다. 1981년 현 위치에 신축했으며, 1990년 증축했다. 건물 기초의 절반이 수중에 채워져 있는 3층 건물로 1층은 유물창고와 사무실, 2층과 3층은 전시관이다.

    이충무공, 해군이나 군함에 관심이 많다면 계속 머무르고 싶을 생각이 들 만큼 87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충무공실, 해군역사관실, 해군사관학교 역사관실, 표훈전실 등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이충무공 표준 영정 모사품, 난중일기 영인본, 조선시대에 쓰던 중형 화포로 가까운 싸움터에 가지고 다니면서 적의 성을 공격하는 데 쓴 중완구(보물 제859호) 등이 있다.

    또 안중근 의사의 유묵인 靑草塘(청초당: 풀이 푸르게 돋은 언덕. 봄에 풀이 푸르게 돋아나듯 우리나라도 독립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안 의사의 염원을 담음. 보물 제569-15호), 臨敵先進爲將義務(임적선진위장의무: 적을 맞이해 앞장서 나가는 것이 장수의 의무다. 군인정신을 강조. 보물 제569-29호) 등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의 모형, 해군이 사용하던 다양한 배들의 모형도 시선을 끈다.

    군항문화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활을 든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다. 2015년 11월 27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립됐으며, 조선의 대표 병기인 활을 왼손에 들고 등에는 편전과 장전이 들어 있는 화살통을, 오른손에는 등채를 들어 삼도수군을 지휘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 동상은 예술성과 상징성, 역사성을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 투어 신청(http://naval.changwon.go.kr)

    인터넷 홈페이지 왼쪽 코너 ‘진해근대문화투어-군항문화탐방신청’에서 한국인은 탐방 전일 12시, 외국인은 탐방일 포함 3일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월요일은 휴무여서 토·일·화요일 탐방 시 전일 금요일 낮 12시, 공휴일 다음 날 탐방 시 공휴일 전일 12시까지 신청하면 된다. 탐방 전날 예약 확인 전화가 온다. 오전 9시 3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30분 등 하루 3회 운영한다. 집결지는 창원시 진해구 충장로 25 1층 관광안내소(해군의집)이다. 투어는 무료로 진행되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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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점= 군부대의 특성상 영내출입 전 차량 블랙박스는 차단해야 하며, 스마트폰 등 모든 촬영장비는 회수할 수 있다. 군부대의 특별한 사정이 생길 경우 신청·승인 후에도 탐방이 취소될 수 있다.

    권태영 기자 media98@knnews.co.kr

    취재협조= 창원시 군항문화탐방 안전센터·진해구청 문화위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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