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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남계서원은 어떤 곳인가

일두 정여창 학덕 기리기 위해 건립…2017년부터 일두 선비문화제 개최한다

  • 기사입력 : 2019-07-07 16: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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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 남계서원(咸陽 藍溪書院)은 문헌공 일두 정여창(文獻公)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건립한 서원으로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된 곳이다.

    남계서원은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으로 문헌공 정여창(文獻公 鄭汝昌)의 학덕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고을 유생 개암 강익(姜翼)을 중심으로 30여 명의 선비들 공의로 1552년(명종 7) 남계(藍溪)에 건립했으며, 1566년(명종 21년)에 남계(藍溪)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 서원으로 승격됐으나,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됐으며, 그후 1603년에 나촌으로 옮겨 복원했다가 1612년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했다.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회의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함양군 '남계서원' 전경. 남계서원은 사적 제499호로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으며, 지난 1552년(명종7)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0동 규모로 건립됐다./전강용 기자/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Baku)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회의에서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된 함양군 '남계서원' 전경. 남계서원은 사적 제499호로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으며, 지난 1552년(명종7) 일두 정여창을 추모하기 위해 10동 규모로 건립됐다./전강용 기자/

    그 뒤 숙종 때 강익(姜翼)과 정온(鄭蘊)을 추가 배향했으며, 별사에 유호인(兪好仁)과 정홍서(鄭弘緖)를 배향했다가 1868년에 별사를 훼철했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됐으며,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전사청(典祀廳)·명성당(明誠堂)·양정재(養正齋)·보인재(輔仁齋)·애련헌(愛蓮軒)·영매헌(詠梅軒)·풍영루(風?樓)·묘정비각(廟庭碑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함양군이 ‘서원문화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정비한 사적 제499호 남계서원./서희원 기자/
    함양군이 ‘서원문화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정비한 사적 제499호 남계서원./서희원 기자/

    사우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성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돼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라 하며,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 장소 등으로 사용됐다. 동재(東齋)인 양정재와 서재(西齋)인 보인재에는 각각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한편 남계서원에는 정여창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선비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선생 탄신 567주년에 맞춰 2017년부터 (사)일두기념사업회에서 일두 선비문화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4810㎡다.

    서희원 기자 seh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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