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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꼬]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함양 남계서원

‘조선 성리학’ 자취 따라 걸어볼까

  • 기사입력 : 2019-07-18 21: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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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6일 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회의를 열고 ‘한국의 서원’ 9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과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필암서원(전남 장성), 도동서원(대구 달성), 병산서원(경북 안동),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8곳과 경남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함양의 남계서원(南溪書院)이 있다.

    글=이현근 기자·사진=성승건 기자·도움말= 김옥군 함양군 문화해설사

    함양 남계서원 전경
    함양 남계서원 전경

    ◆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 서원=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서당-서원-향교-성균관이 있는데 요즘과 비교한다면 사립인 서당은 유치원, 서원은 초·중등학교, 국립인 향교는 중·고등학교, 성균관은 대학 정도로 볼 수 있다.

    서원은 조선중기부터 유생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교육기관으로 대학자들을 기리며 사당을 세워 제사도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는 공간이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도 고려 때 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을 기리며 건립됐다.

    사당
    사당

    ◆ 남계서원, 정여창 선생 기리기 위해 건립= 함양의 남계서원도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鄭汝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소수서원이 가장 먼저 세워졌고, 남계서원은 최충 선생을 기린 황해남도 문헌서원에 이어 세 번째 건립된 곳이다. ‘남계( 溪)’란 명칭은 서원 곁에 흐르는 시내 이름으로, 서원은 유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쌀과 곡식, 함양군수의 지원 등으로 1552년 건립을 시작하지만 중도에 재원부족 등 여러 이유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하면서 7년 만인 1559년에야 완공됐다.

    남계서원은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돼 인근 나촌(羅村)으로 옮겼다가 1612년 옛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됐다.

    ◆ ‘전학후묘’ 서원 배치 롤모델= 많은 서원 가운데 남계서원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특별한 이유는 서원 건축물 배치의 전형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즉 앞쪽에는 교육공간, 뒤쪽으로 올라가면서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이 있는 구조로 만들어 다른 서원을 건립할 때 남계서원의 배치형식을 기본 구조로 삼았을 만큼 ‘롤모델’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이다.

    남계서원은 입구인 풍영루부터 학문공간인 명성당과 제사를 지내는 사당까지 가파른 경사를 자연스럽게 이용해 건물을 배치해 놓았다.

    특히 남계서원은 성리학의 대가이자 동방오현으로 불리는 정여창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기도 하고, 소수서원이나 문헌서원이 고려시대 명현들을 모시는 공간이었다면 남계서원은 가장 먼저 조선시대 명현을 모신 곳이기도 하다.

    풍영루
    풍영루
    풍영루에서 바라본 명성당
    풍영루에서 바라본 명성당

    ◆ 학문과 풍류가 흐르는 곳= 남계서원은 입구부터가 남다르다. 1층에는 문, 2층에는 유생들이 공부하거나 손님이 오면 학문을 토론할 수 있는 풍영루(風詠樓)가 자리 잡고 있어 운치를 느끼게 한다. 당초 외삼문만 있던 입구는 1840년에 2층 누각을 올려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풍영루를 들어가면 양옆으로 연당(연못)이 있고, 왼편에는 묘정비, 오른편에는 유생들이 거처하던 기숙사 격인 동재, 왼편에는 서재가 있다. 동재는 양반 등 신분이 높은 자녀들이, 서재에는 신분이 낮거나 평민의 자녀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각각 3~4명 이내가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원의 중심에는 교육공간인 명성당이 있다. 가운데 빈 공간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곳이고 양쪽 방은 공부를 가르치던 스승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명성당 오른쪽에는 책을 보관하던 도서관 격인 경판고가 자리 잡고 있다. 명성당 뒤쪽에는 정여창 선생 등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야만 다다를 수 있다. 남계서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자리한 고직사는 제사와 유생들 뒷바라지 등 전반적인 서원 업무 등을 지원하는 공간이다.

    묘정비
    묘정비

    〈서원, 알고가기〉

    인재 양성 등을 추구하던 한때 1000여개에 달할 만큼 위세를 떨쳤지만 유생들 파벌과 명문 가문의 이익과 이권이 개입되면서 스스로 가치를 하락시키게 되고, 흥선대원군이 47곳만 남기고 서원철폐령을 내리면서 극에 달했던 서원의 위세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마저 일제침략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피해를 입고, 온전하게 남은 서원은 많지 않다.

    서원은 예를 중시하는 유교를 바탕을 만들어진 곳이어서 들어갈 때는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데,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오는 동입서출(東入西出)을 하지만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왼쪽문으로 나오면 자연스럽게 동입서출이 된다. 무엇보다 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이면서도 아름다운 건축물이자 지역의 대표적인 학자들을 기리는 정신적인 공간으로, 서원마다 모신 학자들의 사상과 철학이 남겨진 곳이다.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의 사상을 기린 곳으로 사전에 그의 삶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가면 아는 만큼 이해가 높아진다.

    남계서원에는 전문식견을 가진 문화해설사들이 상주하고 있어 이분들의 설명을 듣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함양 지곡에는 정여창 선생이 살던 고택도 있어 서원 방문 후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남계서원에서는 정여창 선생을 기리는 제사는 물론 지난 2017년부터 6월이면 선비문화제도 개최하고 있다.

    〈찾아가는 길〉

    남계서원은 통영대전고속도로 생초IC나 함양IC에서 함양으로 가는 국도로 내려와 수동면사무소 앞을 지나 남강변을 따라 10분 정도를 가다 보면 오른쪽에 오래된 한옥들이 있는 곳이 서원이다.

    남계서원 인근에는 메기탕으로 유명한 맛집이 있다. 게르마늄 성분 가득한 토질 때문에 깊은 맛을 낸다는 함양산 양파도 최근 제철을 맞았다. 가격도 저렴해 한 망씩 사 가도 될 듯하다.

    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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