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 (수)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하동군 악양면 입석마을 ‘형제봉 주막’ 주인장 송영복씨

술 한 사발, 노래 한 자락… 나그네에 건네는 ‘쉼표’ 하나
젊은 시절 호텔리어로 사회생활
새로운 삶 찾아 퇴직 후 사업 시작

  • 기사입력 : 2019-07-25 21:14:45
  •   
  •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물결 건너 편에 황혼에 젖은 산끝보다도 아름다운//아, 나의 님 바람, 뭇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하늘 위로 구름따라 무목//여행하는 그대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한대수 곡, 바람과 나).

    백 가지 약초가 날 때마다 모으고 모아 만들었다는 백약초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한두 시간 남짓 되었을까. 막걸리 대신 인생이야기에 취할 때쯤 그는 일생 동안 손에서 놓은 적 없다는 기타에 팔을 뻗어 내려 한쪽 다리에 걸쳐 얹은 후 황혼과 한 몸이 된 집시 같은 표정으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30년 만에 하동으로 귀향해 벌써 10년째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이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 노래 한 자락 건네며 길벗이 되어주는 형제봉 주막의 송영복(63)씨 이야기다.

    ‘형제봉 주막’ 송영복 주인장이 주막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형제봉 주막’ 송영복 주인장이 주막에서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목적지까지 心m, 형제봉 주막= 그가 궁금해진 것은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리 입석마을 입구에 꼿꼿이 서 있는 푯말에 새겨진 ‘心m’. 목적지를 찾아온 사람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않는다. 푯말을 만들어 세운 설명을 들으니 그의 하동 생활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 같다.

    한 나그네가 주막을 찾아 올라와서는 버럭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100m라고 해서 올라왔는데 오고 보니 한참은 더 되어 보이는데 왜 100m라 잘못 적어두었냐고. 그 말을 듣고 보니 물리적 거리라는 게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푯말에 100을 지우고 心자를 새겼다고 한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마을 입구에 心(심)미터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인상적이다.
    하동군 악양면 입석마을 입구에 心(심)미터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인상적이다.

    “처음에는 100m라고 적어놨지요.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와서는 ‘아니, 거기서 여기가 어째서 100m밖에 안 되느냐고, 수백m는 족히 됐겠다’고 투덜거리지 뭡니까. 내가 써놓은 100m라는 게 그 정도일 거라는 것이지, 정확히 딱 100m라는 것은 아닌데…. 푯말을 고친 것은 거리에 구애받지 말고 오라는 뜻이에요. 숫자에 얽매이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은 아무리 길어도 짧게 느껴지잖아요.”

    ◆도시의 번잡함을 떠나온 하동 악양이 뜻밖의 핫플레이스로= 24세에 청운을 안고 고향을 떠났던 청년은 세상만사 원리와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나이를 훌쩍 넘기고 귀향했다. 누구나 반긴 금의환향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주의의 패잔병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엔 서울, 부산, 울산, 마산 등 제법 큰 도시를 돌아다니며 중소규모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일했다. 관광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지인의 소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호텔이었고, 싫지 않은 일이라 호텔 종사원 자격증을 따서 15년 가까이 몸 담았다. 1990년쯤 마산의 한 호텔 개점을 앞두고 오픈 프로젝트팀으로 왔다가 그 일을 마치고 호텔을 떠나 새로운 삶에 도전했다. 벌어놓은 돈으로 여행도 다녔는데 중년에 시간을 보낼 시골집 하나 사놓고 일을 그만두자 싶은 마음에 사업을 벌였다. 레스토랑, 라이브 카페, 호프집, 횟집 등을 운영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IMF 때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위기를 맞게 돼 큰 손해를 보고 사업을 정리했고 이 과정에서 가정이 해체되는 아픔과 팍팍한 도시살이에 염증을 겪고 귀향을 선택했다. 그게 2009년 가을의 일이다.

    “어느 날 일어나니 도시의 삶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컸어요. 그래도 내 고향이 지리산, 섬진강이 있는 덴데, 좋다 거기로 가자 싶었죠. ”

    홀연 하동에 와서 살 만한 집을 물색하던 중 악양의 입석마을 옛 구판장이 눈에 들어왔다. 위치도 좋고 마침 비어 있어 선택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한 달 동안 망치와 톱을 든 손팔을 부지런히 움직여 구판장과 이발소를 구분짓던 벽을 허물고 소소한 리모델링 공사를 거친 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처음에는 거주를 목적으로 했지만 오며가며 사람들이 들렀다 가는 놀이터로 만들어 자신도 소일거리이자 최소한의 생활방편으로 삼자 싶어 주막을 열었다. 인근 귀농인 중 예술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었고 그 즈음 공지영 작가가 쓴 지리산행복학교 주인공들의 뭉치는 곳으로 알려지면서 매스컴도 타고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마을에 귀농귀촌한 사람이 많은데 문화예술활동했던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사랑방 같은 역할을 했어요. 내가 문을 열고 싶을 때 열고 아닐 땐 안 여는데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하면 주말에는 열려고 하고 전화를 하고 오라고 당부를 하죠.”

    막걸리는 동네 양조장에서 사다 숙성시켜 팔고, 칠판에 빼곡히 들어찬 안주는 직접 만든다. 가격이 비싼 거 아니냐고 하면 내리고 또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니냐고 하면 올린다. 20명 남짓 들어앉으면 꽉 차는 주막에선 주인, 손님 구분하지 않고 잔을 나누고, 너나 할 것 없이 이야기 동무가 되는 게 다반사다. 그 속에서 시도 나오고 노래도 나온다.

    주막을 더 활성화해보라는 제안도 있지만 세상과 부대끼기 싫어 들어온 하동에서 번잡하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 10년째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섬진강과 지리산 품에서 비로소, 인생을 누리다= 형제봉 주막 천장과 벽면은 다녀간 사람들이 흥취에 젖어 남긴 짧은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장 두 장 늘다 보니 볼거리가 됐다는데, 위트 넘치는 한 줄과 묘한 울림이 있는 한 줄, 시 같은 한 줄이 모이고 모여 주막에 색다른 멋을 입혔다. 영복씨도 가끔 한 번씩 올려다본단다.

    주막을 열지 않을 때에는 혼자 산에 올라가거나 섬진강변을 걷고, 책을 읽거나 사색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데 영복씨에게는 주막에서 손님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다. 잘 몰랐던 내면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지고 어느 순간이든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은 그만의 인생공부법이다.

    송영복 주인장이 주막 입구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배우 공유가 주인장이 앉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송영복 주인장이 주막 입구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영화배우 공유가 주인장이 앉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올해 9월이 되면 악양에 터 잡은 지 꼭 10년째가 되지 않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니, 그는 대뜸 행복론을 펼쳤다. 매일 만나는 햇살, 공기가 좋고, 사계절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드넓은 악양들판을 보면 다 내 정원인 것 같이 행복하고, 특히 아무도 없는 지리산 둘레길을 홀로 걷는 즐거움은 말로 못한단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왜 미래를 걱정하죠?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고,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미래가 해결될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지금을 누려야 해요. 물질 말고도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사람들은 잘 몰라요.”

    현재를 즐기는 것과 지금을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10년의 세월과 맞바꿨다. 앞으로의 일을 정해놓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나를 사랑해야 한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희진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