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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789) 음하만복(飮河滿腹)

- 황하의 물을 마셔도 자기 배밖에 못 채운다

  • 기사입력 : 2019-08-13 07:5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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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천하를 오래 다스린 요(堯)임금이 은자 허유(許由)를 불러 천하를 대신 맡아 다스려달라고 요청했다. 허유는 물론 거절하였는데, 거절하는 말 가운데, “뱁새가 깊은 수풀에 깃들어도, 나무 한 가지에만 둥지를 트는 것이고, 두더지가 황하 물을 마셔도 자기 배 정도밖에 채우고 만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욕심내어도 자기가 정말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분수를 알고 만족하라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이 말은 달리 주변 환경이나 여건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의 능력만큼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도 쓰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인 공자는 평생 3000여명의 제자를 길렀다. 공자의 도(道)를 얻은 제자는 70여명으로 친다.

    3000여명의 제자가 많아 보이지만, 73세를 산 공자가 넓은 중국 천하에 얻은 제자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몇천 리 밖에서 공자에게 배움을 청하러 오는 제자들도 있지만, 공자와 같은 고을, 심지어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대부분 공자에게 배우러 안 왔다. 공자의 위상과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기 때문에, 공자를 보고 “너나, 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50세 이후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칠 때, 멀리 서울에서 전라도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퇴계 선생의 이웃 마을에 사는 윤진사(尹進士)는 배우러 가지 않았다. “너나, 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윤진사는 “이 이무개가 알고 있는 것은 나도 다 알고 있고, 이 아무개가 행하는 것은 나도 다 행하고 있다.[李某所知, 吾亦知之, 李某所行, 吾亦行之]”라고 큰소리치며, 서울 등지에서 퇴계 문하에 모여든 제자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어떤 사람은 퇴계 선생의 문하에 배우러 간 아들들을 과거시험 준비하라고 강제적으로 불러가기도 했다.

    퇴계 선생과 동시대에 쌍벽을 이루던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제자 가운데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 선생은 본래 서울 사람인데, 남명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여 아예 진주(晋州)로 이사를 와서 살았다. 그때는 남명 선생이 강학하던 덕산(德山)이 진주에 속했다.

    근세 우리나라 한학계의 태두인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28년 재직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겨우 석사 2명을 배출했다. 다른 교수들이 질투를 하여 학생들이 지도교수로 삼지 못하도록 은근히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좋은 보물을 두고도 전혀 활용을 못한 것이다.

    위대한 스승이 있어도 아예 배우러 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배우러 가도 한두 가지 지식만 습득하는 사람도 있고, 그 스승의 학문과 덕행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그 선생의 정신까지 다 배우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여건이 좋아도 받아들이거나 활용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 飮 : 마실 음. * 河 : 물 하. * 滿 : 가득할 만. * 腹 : 배 복.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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