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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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잊혀진 독립운동가 찾아다닌 '25년 집념'
기자시절 접한 빈약한 독립운동 자료에 충격
1997년 연구소 설립해 의병·독립운동가 본격 연구

  • 기사입력 : 2019-08-15 20: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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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일은 힘들고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내야만 그 속에서 보람을 발견할 수 있다.

    재야사학자인 정재상(54)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민족 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해 사재를 들여가며 25년간 외길을 걸어가고 있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 인근에 자택을 연구소로 겸하는 소박한 공간이지만 항일 독립운동가 발굴의 산실이다.

    사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들은 많지만 의병이나 독립운동으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은 학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만큼 항일 의병이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일은 생각 외로 힘든 작업이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자택 겸 연구소에서 항일 독립운동가 관련자료를 보고 있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하동군 악양면에 있는 자택 겸 연구소에서 항일 독립운동가 관련자료를 보고 있다.

    정 소장의 독립운동가를 향한 열정과 노력에 힘입어 알아주는 이 없이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독립운동가 1000여명이 세상과 마주했다. 이 가운데 250여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았다. 제74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아 하동 출신 5명을 포함한 영·호남 독립운동가 25명이 건국훈장 등 정부포상을 받기도 했다.

    ◆지방에서도 3·1절, 광복절 행사 개최를= 정 소장은 이달 초 다소 기발한 생각을 정부에 제안해 화제가 됐다. 지금까지 중앙에서의 개최가 관행으로 굳어진 3·1절과 광복절 국가 기념행사를 내년부터 격년제로 지방과 해외에서도 개최하자는 것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과 해외 개최는 민족 화해와 평화 정착을 위해 필요하다며 대통령과 서울을 제외한 김경수 지사 등 전국 16개 광역단체장에게 공개 요청하는 서한문을 보냈다.

    정 소장은 서한문에서 올해는 3·1절 10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년은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뜻깊은 해인 만큼 첫 3·1절 기념행사와 광복절 경축식을 영·호남에서 열자고 주장했다. 순차적으로는 순국선열들이 활동했던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무대를 옮겨 개최함으로써 겨레의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 소장은 “내년 101주년 3·1절 행사는 지방에서 유일한 하동 ‘대한독립선언서’(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를 만들어 3·1독립운동을 영호남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영남(경남)에서, 광복절 경축식은 호남에서 대통령이 주관하는 전국 최초의 지방행사로 추진하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 영·호남 광역단체장이 힘을 모아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을 열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대통령이나 광역단체장의 공식적인 회신은 없다. 그러나 지방분권 시대에 맞게 중앙과 지방을 격년으로 기념행사를 열어야 한다는 정 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중앙과 지방 격년제에 이어 수년 내에 안중근·홍범도 장군 등 많은 독립지사가 풍찬노숙하며 활약하다 순국한 중국과 러시아에서 남북 정상이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개최한다면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대내외에 천명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빈약한 독립운동 자료가 연구로 이끌어=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오히려 사재를 털어야 하는 독립운동 연구를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정 소장은 지난 93년부터 몇 년간 지역신문 기자 생활을 했다. 당시 광복절 무렵 지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특집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너무 없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하동군의 군사(郡史)를 찾아보니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란 것이 이름에다가 한 줄 정도의 설명뿐이었고 발굴된 독립운동가들도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정 소장에게는 이런 사실이 충격임과 동시에 독립운동 연구를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첫 출발은 하동 악양 출신으로 항일 의병장인 박매지(또는 박인환)에 관한 기록이었다. 의병 400명 이상을 이끈 의병장은 전국에 2명밖에 없다는 일본군의 기록이 있을 정도로 박매지 의병장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박매지 의병장에 관한 기록은 ‘일본군에 체포돼 귀순을 거부하다 총살당했다’는 짤막한 설명 외에 활동상은 전혀 없었다. 일본군에 맞서 싸웠던 의병들의 활약이 궁금했던 정 소장은 지난 1997년 지금의 경남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의병 연구에 뛰어들었다.

    독립운동을 연구한 25년 가운데 20년 이상이 의병에 관한 연구일 정도로 의병 연구에 애착이 깊다. 정 소장은 “3·1만세운동은 재판 기록이나 고증 등 각종 기록들이 있는데 비해 의병에 관한 기록은 어떤 의병 활동을 했는지, 후손들은 남아 있는지,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는지 등의 내용이 거의 없다”며 “독립운동가에 대한 그런 빈약한 자료들이 의병 연구의 길로 이끌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정 소장이 이병홍 지사 묘를 살펴보고 있다./정재상 소장/
    정 소장이 이병홍 지사 묘를 살펴보고 있다./정재상 소장/

    자료 수집을 위해 인근 지역 문화원을 찾아가고 자료를 찾는 방법도 배워 나갔다. 자료가 방대한 대전 국가기록원은 정 소장에게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정 소장 본인이 국가기록원을 수없이 들락거리고, 생업으로 인해 시간이 없을 때는 사비를 들여 대학생 알바를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의병 1000여명을 새롭게 발굴했다. 경남·북과 전남·북 등 17개 시·군의 200명 가까운 독립운동가들을 국가유공자의 영예를 누리게 했다.

    정 소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와 지역 어른들로부터 ‘자네 참 존경하네’라는 말 한마디가 가슴 뛰게 한다”며 “위국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국가와 우리사회가 이분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합당한 예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독립운동가 발굴 및 선양 등의 유공으로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2007년)을 비롯해 하동군민상(2011년), 경상남도문화상(2017년), 3·1운동 100주년 기념 국가대표 33인상(2019년)에 이어 지난 6월에는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100년 전 의병 영혼과의 대화, 평생 과업=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는 이제는 피할 수도 없는 숙명처럼 여긴다. 한 분야 연구에 깊이 빠져 있다 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의병이나 독립운동 연구는 앞으로도 끝이 없을 정도로 할 일이 많다고 말한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아 정 소장 본인이라도 힘 닿는데 까지 연구를 계속한다는 생각이다.

    정 소장이 항상 미안함을 느끼는 가족들도 지금은 든든한 후원자이다.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독립운동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보람된 일들이 하나하나 쌓여 가면서 이제는 적극적인 조력자가 됐다. 연구소라 하지만 다른 직원 없이 모든 연구가 정 소장에 의해 이뤄진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아내와 아들은 이제 자료 정리를 도와주면서 정 소장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정 소장은 앞으로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을 정리해 집필 중인 영호남 항일투쟁사를 발간할 계획이다. 독립운동가를 최대한 많이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다. 또 독립운동가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념관 건립도 희망하는 사업이다. 정 소장이 구상하는 기념관은 하동 출신 인사만이 아닌 지역 구분 없이 활동을 펼쳤던 의병들처럼 구례, 광양 등의 인근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함께 채우자는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정 소장은 “자료 속에서 새로운 의병들을 발굴할 때마다 100년 전 의병들의 영혼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며 “독립운동했던 분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생활 형편이 어렵다. 연구와 발굴을 통해 그런 분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다”고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글·사진= 김재익 기자 ji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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