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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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스페인 세비야

첨탑에 걸린 100년의 역사

  • 기사입력 : 2019-08-21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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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8월을 시작으로 여행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매달 한 번씩 여행한 곳에 대하여 여행기를 쓰는 일은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내 여행의 기억이 여행기를 한 편 마무리하고 나면 더욱 선명해지고 오랫동안 내 속에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찾아보며 다시 한 번 역사와 도시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부분도 지속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행에서 느낀 그리고 내가 평소에 느낀 점을 조금이나마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더 많은 경험들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스페인 여행의 시작= 세비야를 시작으로 앞으로 그라나다와 바르셀로나까지 이어지는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세비야는 내가 처음 만나 본 스페인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여행을 다녀 온 후 스페인에 대해 더욱 가까워졌기에 각 지방이 가진 문화와 역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조금은 스페인의 도시마다 가진 다양한 매력에 때로는 혼란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그러한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가 더욱 스페인의 매력에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비야의 거리= 세비야에 처음 도착한 느낌은 도시의 골목이 아름답다는 느낌이다. 밤늦게 세비야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만난 자연의 풍요로움이 느껴지는 이색적인 오렌지 가로수와 그러한 가로수와 잘 어울리는 가로등과 거리의 풍경만으로도 우리가 기대하는 이국적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오래된 도시를 방문하면 도시의 구석구석을 걷는 것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그때 그 거리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르며 기분이 묘해졌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만나 각자의 매력을 존중하며 발전한 안달루시아 특유의 매력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비야 거리.
    세비야 거리.
    세비야 골목.
    세비야 골목.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에서 가장 기대되는 곳은 역시나 세비야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비야 대성당이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며 이전의 이슬람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지금의 성당을 건설했다고 한다. 성당은 1세기 동안 건설되었기에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건축양식이 순서대로 적용돼 매력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건설 과정을 찾아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이전의 모스크 첨탑의 아름다움에 그 첨탑을 보존하여 성당을 건설했으며 그러한 첨탑이 지금의 세비야 성당의 또다른 매력이 된 히랄다 탑이 됐다고 한다. 어쩌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러한 점이 다른 문화와의 공존을 통해 발전해 온 안달루시아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히랄다 탑은 세비야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도시의 전경을 보기에 좋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세비야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하기를 권한다.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을 보존해 성당을 건설한 ‘세비야 대성당’. 그 첨탑이 지금의 ‘히랄다 탑’이 됐다.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을 보존해 성당을 건설한 ‘세비야 대성당’. 그 첨탑이 지금의 ‘히랄다 탑’이 됐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 100년 동안 건축돼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건축양식이 적용돼 있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 100년 동안 건축돼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건축양식이 적용돼 있다.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 세비야 대성당은 그 크기만큼이나 주목받는 이유는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성당에는 세비야가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가 되도록 많은 기여를 한 콜럼버스의 시신이 특이한 형태로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남긴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으리” 라는 말에 따라 4명의 스페인 왕이 그의 관을 들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콜럼버스가 세비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면 이렇게 그를 지극히 대접하는지 궁금해졌으며, 그렇게 세비야가 유럽의 대표적인 도시가 되는데 큰 영향을 준 콜럼버스에 대하여 많이 알아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리스본에서 지내던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통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많은 후원자들을 찾아 설득하는데 실패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그러한 과정에서 세비야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세비야 입장에서도 그 당시 유럽의 상권을 장악하던 이탈리아, 지중해의 교역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 그리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까지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모험이자 선택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신항로 개척을 통해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만큼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세비야 성당에 있는 모습을 통해 그만큼 그때의 영광을 다시 부흥하고 싶은 스페인의 의지가 느껴졌다. 리스본의 발견의 탑처럼 언젠가 그들이 이러한 도전정신으로 또다른 부흥기가 오기를 기대해본다.

    △콜럼버스가 남긴 것들= 콜럼버스는 남미의 콜롬비아의 명칭에서 보듯 세계의 곳곳에 그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워싱턴 DC의 DC가 District of Columbia이며 미국과 미주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오랬동안 쓰였다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우리들의 삶 곳곳에 남겨져 있다. 또한 그가 신항로에서 만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라 믿었기에 원주민을 인디안 그리고 서인도제도라 명명하기도 했다.

    아메리코에 의해 이곳은 인도가 아닌 그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콜럼버스가 가진 이러한 믿음과 신념이 신항로 개척을 이루어 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일은 이렇게 예측과 다르게 흘러가고 그러한 예측과 다르게 흘러간 결과가 이처럼 우리의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렇기에 생각을 실천하고 또 끊임 없이 노력하다 보면 이렇게 콜럼버스와 같이 자신의 신념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반대로 신대륙의 원주민 입장에서는 콜럼버스가 개척한 신항로가 그들의 삶에서는 좋지 않은 결과로 작용하기도 했다. 어쩌면 천사와 악마는 이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능력과 재능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그리고 세상은 좋게 또는 나쁘게 변해갈지 모른다. 그렇기에 요즘 인간다움에 대하여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
    세비야 야경.
    세비야 야경.
    메트로폴 파라솔.
    메트로폴 파라솔.

    △플라멩코= 처음 플라멩코를 생각했을 때는 조금은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느낌에 맞게 축제의 분위기에 신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만난 플라멩코는 슬픔과 애환 그리고 그들의 삶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이 있었으며 음악을 듣다가 또는 춤을 보다가 보면 조금은 먹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코엘류의 책 ‘포르토벨로의 마녀’의 주인공이 춤을 추는 부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춤이란 어쩌면 이렇게 기쁠 때만 추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삶은 희극보다 비극에 가깝기에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오랫동안 플라멩코가 사랑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플라멩코에 대하여 새롭게 느껴보는 시간이 됐다.

    플라멩코.
    플라멩코.

    세비야는 첫인상부터 떠날 때까지 알면 알수록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매력적인 곳이었다.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이러한 점이 여행의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했던 것과 실제 경험이 다른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쩌면 우리의 세계관은 넓어지고 성장하는 것일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유럽과는 또 다른 스페인의 매력이 새롭게 다가왔으며, 내가 경험했던 이슬람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조화로웠던 터키와 이스탄불과도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여행을 통해 우리는 경험하고 직접 느껴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다. 앞으로도 여행기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오래도록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메인이미지

    △정두산

    △1985년 부산 출생

    △부경대학교 전자공학 전공

    △두산공작기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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