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7일 (일)
전체메뉴

낙과의 꼭지 - 황학주

  • 기사입력 : 2019-08-29 07:58:33
  •   

  • 흐린 날 개어귀에 햇살 비칠 때

    박차를 가하던 필생이 툭, 떨어진다

    단 한줄의 소리도 없다

    결심을 해체한 순간의 육체

    바닥까지 숙이고 남은 듯한

    모과 꼭지

    바로 직전까지 쌓던 그 많은 열심은

    마치 모과가 아니었다는 듯

    꼭지는 마르고

    흐린 날 개어귀에 평심의 햇살

    그 무선(無線) 한줄은

    더 이상 손볼 곳이 없다

    태양풍 속으로 날아간 낙과의 중심

    ☞ 꽃이 피었다 지고 열매가 맺을 때 열매는 제 필생의 목표가 단지 완숙에만 있을까. 그러나 그 많은 결심과 열심이 어느 날 채 맛과 향을 완성하기 못하고, 단 한 줄의 소리도 남기지 않고, 툭, 사라져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빈자리의 허무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삶에 늘 최선을 다하며 산다. 때로는 삶의 끈이 끊어질 것만 같은 위험한 순간에 직면하기도 하고 스스로 놓아버리고 싶은 유혹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그 모든 난관을 스스로 극복하거나 주변의 도움으로 고난을 벗어나기도 하면서 순간순간을 경이롭게 맞이한다.

    남아있는 꼭지가 마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모과나무는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태양풍 속으로 날아가 버린 그 낙과의 중심은 지금 어딜 헤매고 있을까. 이기영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